전두환 정권 시절, 군대에 입대해서 광주학살의 현장에 차출되어 부상당하고, 이후 경찰이 되어 시국사범을 연행하는 등 주인공은 점차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세계를 경험한다.
그러다 첫사랑이었던 여자가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찾아가서는 자신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결국 주인공은 열차에 몸을 던지면서 돌아가겠다고 절규한다. 그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까? 주인공을 맡았던 설경구씨의 연락을 받고 시사회장을 찾았는데, 그때가 막 4.13 총선을 앞둔 2000년 3월 중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 내내 계속 눈물을 흘렸는데, 아마도 주인공과 비슷한 심정 때문이었나 보다. ‘박하사탕’의 주인공은 내가 걸어온 길과는 전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지만 폭압적인 현대사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시대를 공유하고 있었다.
현실세계의 어두운 관행에 무기력하게 타협하면서 살아가다보면 가장 순수했던 시절, 자신의 아름다웠던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자신에 대해 고통을 느낀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대개 자족적으로 끝나고 말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재설계를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었다. 현실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그 원대한 꿈은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할 정도로 완성된 것은 결코 아니다.
누구에게나 버릴 수 없는 꿈이 있는 법이다. 꿈을 버린 순간부터 우리는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를 늘 꿈꾸어왔다. 그때 버릇처럼 말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이런 사회를 물려주지 말자. 어두운 골방에서 경찰의 눈을 피해 시위계획을 짜야 하는 세상, 최루탄 뽀얀 거리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어야 하는 세상, 감옥에 끌려가 법정에서 부모님을 울게 만드는 그런 세상은 물려주지 말자.
나는 지금도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진실로 고통스러운 것은 현실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청소년 시절, 달동네에서 살았던 시절조차도 가족간에 사랑을 나누고 살았을 때는 행복했다.
절망은 가난한 현실 때문이 아니라, 미래가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을 수 없을 때 찾아온다. 버림받았다는 절망감, 좋아질 수 없다는 좌절감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있다. 국가는, 그리고 사회는 이들 어려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답해야 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기억하며, 결코 당신들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과 공동체가 있는 한, 삶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나는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실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공동체를 꿈꾼다.
사람들은 흔히 문화를 이야기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렇다. 문화는 공동체를 통합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를 통합시키는 것은 인류의 이상이다. 여기에 문화의 가능성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있는 강렬한 문화적 잠재력을 발현시켜 사대주의에 찌든 우리 문화를 다시 세우고 싶다.
국가를 문화적으로 개조하는 일, 전쟁과 폭력의 정글로 변해가는 세계를 평화적으로 통합하는 일, 이것이 내가 버릴 수 없는 세번째 꿈이다.
얼마 전에 평양을 다녀왔다. 우리의 또 다른 반쪽이 나뉘어서 고통 받고 있었다. 그 현실이 그들이 선택한 것이라 해도 그 결과를 고스란히 그들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분단의 책임은 남북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통일은 우리 세대가 이루어야 할 가장 큰 과제다. 나는 이 일에 앞장서고 싶다.
대학 시절에 외친 통일이 감성적 구호였다면 지금부터 내가 외칠 구호는 훨씬 더 현실적인 구호가 될 것이다.
벽을 뚫기 위한 활동에서 이제 길을 놓고 다리를 놓는 일에 이르기까지 통일이 현실화되도록 해야겠다. 서로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대결의식을 녹여버리고, 무엇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소중한가를 토론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다. 양보하고, 굳게 손을 맞잡으면서 분단의 장애물들을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제법 점잔을 떨어야 하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 해도, 통일의 그 날, 나는 남북 해외동포의 어깨를 부여잡고 큰 소리로 목놓아 울고 싶다. 젊은 시절의 소망과 꿈은 참으로 질기다.
길을 가다가도 떠오르고 꿈속에서도 나타난다. 학생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포기했던 시인의 꿈은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제 여고 국어교사의 꿈은 실현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 시집 한 권을 내놓고 싶다.
대형서점에서 한나절을 서성거리며 누가 내 시집을 읽는지 흘낏 건네다 보고, 괜히 다른 책을 고르는 척 하며 누군가 그 시집을 사 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일, 이것이 개인적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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