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법원장을 생각한다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8-16 18: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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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손혁재 {ILINK:1} 곧 노무현 대통령은 차기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 9월에 최종영 대법원장의 임기가 끝나는 것이다. 다음 대법원장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새 대법원장 후보로 이미 적지 않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법원공무원노조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민주노총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이홍훈 수원지방법원장, 최병모 전 민변 회장, 조무제 동아대 법대 석좌교수, 조준희 언론중재위원장 등 5명을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추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조무제 교수, 조준희 위원장과 손지열 법원행정처장, 유지담 대법관, 이용훈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추천했다.
어떤 인물이 새 대법원장이 되어야 하는가.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의 표현을 빌면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차가운 머리란 냉철한 법률적 지식만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사회의 오늘을 제대로 읽고 내일을 꿰뚫어 보는 지혜, 올바른 사법개혁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능력 등도 차가운 머리에 속한다. 따뜻한 가슴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보호 의사를 말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은 사법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이다. 시민 사회단체들이 새 대법원장의 바람직한 인선기준으로 “과감한 법원개혁을 통해 우리 사법부의 고질병인 사법관료주의를 혁파하고 입법부나 행정부 견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소수자와 약자 보호’라는 사법부 본연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는 새로운 사법부를 이끌어 낼 참신한 인사”여야 한다고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민단체들이 대법원장 인선에 관한 의사를 밝히자 이에 대해 반발이 이어졌다. 한 중견 법관이 대법관 출신이 아닌 인사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표를 내겠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대법원장 인선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출신만이 대법원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에도 15년 이상의 법조계 및 법률 관련 경력만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또 대법원장 인선에 관심을 갖고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최소한의 기준을 밝힌 것이 사설까지 쓸 정도로 부당한 개입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시민단체들이 대법원장 인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법원개혁이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마저 침해할 정도로 수직관료화된 사법부를 과감하게 혁신할 수 있는 인물이 대법원장이 되어야 한다. 사법개혁을 통해 사법부의 관료조직화를 조장하는 법관인사 방식과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된 재판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해야 사법부가 오욕의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의 권한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 재판은 물론 사법부의 인사, 예산, 행정 등 사법부의 대부분의 권한이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몰려 있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의 재판장을 맡으며, 대법관회의의 의장직을 맡으면서 표결시 찬반숫자가 동일할 경우 최종결정권을 갖고 있다. 13명의 대법관 제청권과 정원 2074명의 법관, 300명의 예비판사, 1만여명의 법원공무원에 대한 임명, 보직부여, 근무평가 및 징계에 대한 권한과 정원 2000명의 사법연수원생 임명권도 갖고 있다. 50명 가까운 사법부내 인사 관련 각종 위원회의 구성권도 갖고 있다. 또 법원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과 사법연수원장, 사법연수원 교수를 임명할 권한도 갖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행정부, 입법부와 함께 주요 국가기구 구성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대법원장은 헌법재판관 9명중 3명, 중앙선거관리위원 9명중 3명, 국가인권위원 11명중 3명을 지명할 수 있고, 부패방지위원 9명중 3명, 공적자금관리위원 5명중 1명을 추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대법원장이 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대법원장 인선 과정에서 임명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무난하고 원만하게 법원을 이끌어갈 능숙한 사법 관료라는 낡은 기준을 버리면 좋겠다. 기존의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인선에서 보여준 법관들의 ‘승진인사’라는 그릇된 관행도 깨면 좋겠다.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는 물론이고 대법관이라는 자리도 법원 내 승진경쟁의 최종 목표, 법관이 마지막에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로 봐서는 안 된다.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는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충실한 사람, 전통과 관습과 법률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사법부 관행 중 잘못된 것에 대해 과감히 개혁의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사람, 필요하다면 대법원장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까지도 줄일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계층의 여론이나 야당의 정치 공세에 밀려 무난한 인사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론도 적당히 무마하고 국회 인준절차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성향의 인물이라든지, 사법 개혁의 수행 능력과는 관계없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의중을 잘 헤아려 줄 인물을 찾는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 중 연방대법원 판사 지명만큼 국가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다”는 제럴드 포드 전 미국대통령의 말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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