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감독은 2일 오전 10시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2010남아공월드컵 결산 기자회견에 앞서 대표팀 감독직 재계약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허 감독은 "부족한 저를 믿고 감독직을 맡겨주신 대한축구협회(KFA. 회장 조중연. 이하 축구협회)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며 "이 자리에서 내 입장을 바로 전달하는 것이 차기 감독 선임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표팀 감독직을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허 감독은 "물러나겠다고 말할 때 약간 떨렸지만,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후배 지도자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재계약 제의를 고사한 배경을 설명했다.
◇다음은 허정무 감독의 일문일답.
-결정을 내린 정확한 시기는 언제인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멀기도 하고,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았다. 주변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오늘 서둘러 발표하게 됐다."
-16강전을 치르기 전인가, 아니면 직후인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코칭스태프들에게 "결과에 상관없이 본선을 마친 뒤 시간을 갖겠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본선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축구협회 관계자들께 이야기도 했다. 고민이 됐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이 내가 물러날 때라고 생각했다."
-축구협회는 경험 많은 감독이 대표팀을 길게 이끌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연임을 제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려해보지 않았는가.
"축구계에는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대표팀 발전을 위해 나도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고 싶다. 대표팀 감독직이 부담되는 자리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분들이 있다고 믿는다. 후임 감독이 훌륭하게 팀을 이끌어줄 것이다."
-2014브라질월드컵까지 축구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 싶다는 것이 유소년에 관심을 갖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이번 본선을 통해 느낀 것은 남미 팀이 우리의 벽이라는 느낌이었다. 과연 어떤 점을 보완해야 다음 월드컵,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체력과 정신, 조직력은 결코 뒤지지 않지만, 볼 터치, 패스, 순간 상황 판단, 영리한 플레이 등 개인 기량은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은 모든 축구인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점들을 연구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나는 축구인으로서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았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한국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로든 축구발전을 위해 헌신할 생각이다."
-후임 감독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현재 대표팀은 다 능력 있고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선수들로 채워져 있다. 앞으로 더 정진해주기 바라며, 후임 감독도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계실 것이다. 내가 굳이 여러가지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다시 프로축구계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가.
"K-리그에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쪽으로든 축구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는 있을 것이다."
-2년 6개월 간 대표팀 지도자로서 힘들었던 순간은. 퇴임 후 하고 싶은 일은 없는가.
"승부의 세계에 살다 보니 승패 여부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많은 것 같다. 축구쪽으로는 남미팀을 꼭 뛰어넘어 보고 싶고, 축구 외적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웃음)."
-역대 감독 중 언론과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지도자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언론에 대한 소회는.
"언론에 대해서는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인터넷 댓글을 보다 보면 선수나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보이기도 한다. 잘못을 했을 때는 비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인신공격은 상대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이런 풍토는 좀 바뀌었으면 한다."
-외국인 사령탑을 차기 감독으로 세우자는 의견도 있는데, 어떤 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잘못 얘기할 경우 난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말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국내 지도자가 대표팀을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 기뻤던 시기는.
"중국에 0-3으로 패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질 수도 있다고 낙천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승부의 세계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배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내 별명 쪽에 '오뚝이'라는 것이 있는데,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힘이 지도자에게는 필요하다고 본다. 본선에서 그리스를 이겼을 때와 16강 진출이 확정됐을 때 기뻤다. 선수를 지도하는 감독 입장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차기 감독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만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바람직한 범위 내에서 도울 방법은 있을 수 있지만, 전임 감독이라고 해서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후임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
-가족의 만류도 재계약 고사의 이유로 꼽히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매 번 마음고생을 하고 신경쓰는 모습이 미안했다. 그동안 해주지 못한만큼 잘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다."
-선수와 지도자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에 대한 느낌은.
"지난 세 차례 월드컵에서는 항상 후회가 됐다. 이번 월드컵만큼은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시나 끝나고 보니 (후회를) 안하게 될 수 없었다. 나는 내 몸이 움직이는 한, 축구계로부터 받은 은혜를 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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