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스러운 ‘오픈프라이머리’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5-11-10 13:55:4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편집국장 고하승


이른바 ‘팩스입당’으로 구설수에 오른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고향인 부산 기장군에서 여당의 오픈프라이머리에 도전하고자 입당했다”고 밝혔다.

얼핏 코미디처럼 들리지만 오픈프라이머리 경선방식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사실 국정원장을 지낸 인사라면 정치권에서 거물급으로 취급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은 되레 그가 가까이 다가설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한 마리의 징그러운 벌레 보듯 하는 것 같다.

실제 그는 경박한 처신으로 인해 여야 모두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서울시당은 '몰래 입당' 후 재보선에서 야당 후보를 도운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10일 윤리위원회(위원장 김을동)를 열고 김 전 원장에 대해 ‘탈당권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서울시당 위원장 김용태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라며 "선거에 있어서 상대방을 도왔다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으로서는 윤리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새누리당 당규(20조)에는 당 이념 위반·해당 행위, 당헌·당규 위반, 당명 불복 및 당 위신 훼손, 불법 정치자금 수수나 선거법 위반 유죄판결 등의 경우 제명, 탈당권유, 당원권정지, 경고 등의 징계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다라 서울시당은 ‘탈당권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당헌규정상 열흘 이내에 자진 탈당하지 않으면 자동 제명하게 돼 있어, 사실상의 제명 조치나 마찬가지다.

김 전 국정원장을 대하는 야당의 태도는 더욱 냉담하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 해운대기장을 지역위원회는 이날 김 전 원장을 ‘배신과 변절의 아이콘’으로 규정하고 “다수 국가정보기관 종사자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자존감을 심각히 훼손시킨 대한민국 공직자의 수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에도 신의가 있고 도의가 있고 질서가 있는 법”이라며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엉뚱한 망발을 일삼는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야 각 당으로부터 이런 평판을 받는 사람이라면 내년 4월 총선에 앞서 실시될 당내 공천과정에서 걸러지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도전하기 위해 입당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을 실시하면 공천 경쟁자를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다.

정말 웃기는 얘기 아닌가. 대체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이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것도 오래 전에 입당해 지역기반을 다진 것이 아니라 경선까지는 불과 몇 개월 남기지 않은 시점에 입당한 인사가 경선에 대한 자신감이라니 어찌된 노릇인가.

그의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것인가.

비록 그가 경박한 처신으로 수차례 물의를 빚기는 했으나. 오픈프라이머리 도전 발언은 결코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보장사꾼’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그는 어쩌면 오픈프라이머리 경선방식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허점을 적극 활용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은 당의 주인인 당원이나 대의원이 경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역선택’이 가능하다. 즉 새누리당 지지층이 아닌 야당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경선에 참여해 취약한 후보가 선출되도록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김 전 원장이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에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런 허점을 노렸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은 ‘김만복스럽다’는 말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 여야 지도부는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제도인지 깨닫고 당의 주인인 당원들에게 공천권을 되돌려 주는 올바른 방식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여야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김 전 원장이 이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태경 의원의 말마따나 이걸 측은하다고 여겨야하는 건지, 아니면 정치를 희화화했다고 비난해야 하는 건지, 정말 난감하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하승 고하승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