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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이 끝났지만 그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3당 구도를 만든 국민들의 민심을 정확히 새겨들어야 하는데 여야 각 당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원내 1당 자리까지 내어준 새누리당은 참패 했으니 마땅히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국민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100번이고 1000번이고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1당이 되었다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고, 국민의당은 ‘호남 싹쓸이’에 지나치게 고무돼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더민주나 국민의당이 잘 해서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한국리서치가 문화일보의 의뢰로 선거직후인 지난 16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전화 여론조사(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P. 응답률 10%. 관련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를 실시한 결과를 보자.
먼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참패 이유’에 대해선 ‘새누리당 지도부의 균열과 공천과정에서의 갈등 때문’이라는 응답이 43.9%로 가장 높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된 이유에 대해선 10명 중 7명인 68.2%가 ‘정부와 새누리당이 잘 못한 것에 대한 반사이익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결과적으로 더민주가 총선 과정에서 특별히 무엇을 잘해서 원내 1당이 된 것이 아니라 상대 당인 새누리당이 ‘지도부의 균열과 공천과정에서의 갈등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국민의당은 어떤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이유에 대해서도 유권자의 절반 정도인 50.2%가 ‘기존 양당 정치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한 반사이익’이라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이번 총선은 ‘누가 좋아서’라기보다 ‘누가 싫어서’라는 투표 형태가 전형적으로 작동한 셈이다.
즉 더민주가 수도권에서 승리한 것은 ‘더민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새누리당이 싫어서’이고,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압승을 거운 것은 ‘국민의 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더민주가 싫어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지금의 승리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이런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낮은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니 걱정이다.
우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보자.
그는 지난 8일 광주를 방문해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총선결과 광주를 비롯해 호남 전역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광주 8곳 중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뒤지지 않던 광산을 이용섭 후보가 권은희 국민의당 후보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전남 순천에선 당선이 유력하던 노관규 후보가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패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호남의 ‘반(反)문재인’정서를 선거에서 확인한 이상 야권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 자숙하고 칩거하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같은 당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광주ㆍ전남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개호 의원도 “호남 패배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한다”며 “호남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문재인 전 대표는 당분간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는 수도권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호남민심이 저를 버렸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호남 행을 결행하는 등 노골적인 대권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행보 역시 국민이 보기엔 영 마뜩치 않다.
그는 총선이 끝난 이틀 뒤 뚱딴지처럼 “대통령 선거에 결선 투표를 도입하자”고 말했다.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서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밝혀야할 시점에 대선을 운운하는 것은 자칫 ‘대통령 병’에 걸린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래선 안 된다. 단순히 상대의 잘못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거둔 승리는 내 것이 아니다.
국민이 언제든 지지를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이 자신을 버리더라도 친노 세력만으로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당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또 안철수 대표는 호남 지지만으로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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