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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정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바른미래당이 '전당대회 룰'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국민의당·바른정당 출신 간에 팽팽한 신경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게 6.13 지방선거에서 가장 참혹한 성적을 거둔 정당의 모습이라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다. 물론 왜 선거에서 패배했는지, 치열하게 논의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대룰’ 문제는 그런 논의가 아니다. 오로지 어느 쪽이 당권을 잡느냐 하는 문제에만 매몰돼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사실 바른미래당은 올해 초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합당으로 창당했지만, 창당 직후 두 당의 사무처와 직원을 통합하지 못하고 두 개 당사를 별도로 운영하는 등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상 ‘한 지붕 두 가족’살림을 한 셈이다. 이런 정당이 선거에서의 승리를 기대했다면, 그건 ‘도적 놈 심보’나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바른미래당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정당의 모습으로 선거를 치룬 것이었다.
이래선 안 된다.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을 서로 ‘편 가르기’ 해선 희망이 없다.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고 당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그러자면 선거의 주요패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당의 정체성 문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바른미래당은 최근 의원 워크숍을 통해 당 정체성을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공존하는 새로운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기존의 '합리적 중도' 대신 '진보'라는 표현을 명기했으며, 이와 함께 탈이념 민생·실용·개혁정당을 표방했다.
아주 잘 했다. 선거 이전에 진즉 이렇게 했더라면,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바른미래당 지지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이 합의하지도 않은 사실을 발표했다면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거나 이념 투쟁에 나설 것을 예고하고 있으니 문제다.
선거에서 완패한 정당의 모습, 그런 정체성 그대로 가지고 가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과연 이들이 바른미래당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투표 하는 문제도 그렇다. 지금 바른미래당은 완벽하게 탈바꿈해야 한다. 그러자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당을 혁신으로 이끌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당원들이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투표 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양당 통합 이전, 국민의당은 당헌상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선출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반면 바른정당은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통합선거로 선출하도록 규정돼 있었으며, 통합 과정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일방적으로 양보해 현행 규정, 그러니까 당 대표와 최고위원 3명을 통합선출 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즉 전대 후보 중 최다 득표자가 당대표, 2∼4위 득표자가 최고위원을 맡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 바른미래당은 혁신을 해야 할 때인데, 그런 체제로는 당을 혁신할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당헌을 바꿔서라도 강력한 당 대표를 선출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건 계파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런데 바른정당 출신의 이지현 비대위원은 "통합 정신에 따라 만든 당헌을 한 번도 적용하지 않고 왜 고치려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의 일방적 양보에 의한 당헌을 ‘통합 정신’ 운운하는 것도 어처구니없거니와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잘못되었으면 당헌을 바꾸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른정당 출신 이지현 비대위원은 왜 당헌개정에 부정적 의견을 낸 것일까.
아마도 당원 수에서 크게 밀리는 바른정당 출신들이 분리선출 시 차기 지도부 구성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히 잘못된 행태다. 지금은 계파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우선 당이 살아야 국민의당 출신도 살고 바른정당 출신도 사는 것 아니겠는가.
당이 망해가는 판국에 바른정당 출신이 당권을 잡는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꼭 바른정당 출신을 지도부에 합류시켜야 한다면, 전당원투표에 여론조사 결과나 국민투표 결과를 일정비율 반영해 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국민의당 출신들이 그런 정도는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게 정치다. 모쪼록 제3지대의 희망인 바른미래당이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바른미래당이 집중해야할 일은 제왕적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이다. 그래야만 2020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당 대표가 선출돼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전대룰’은 오로지 그걸 위한 차원에서 결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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