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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혹은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비핵화에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한마디로 북한 비핵화 협상에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23~26일(현지시간) 3박 5일 간 미국 뉴욕을 방문해 남북미 종전선언을 위한 전방위 외교전에 ‘올인’했다. 26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가하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재확약했다는 점을 들며 유엔의 ‘상응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즉 북한의 비핵화를 가속화하기 위해선 먼저 ‘종전선언’을 하고 유엔은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북한의 비핵화가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 리스트를 제출하는 등 아직 구체적인 핵 폐기 실행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김정은의 약속만 믿고 종전선언을 하고 대북제재를 해 주는 게 바람직할지 의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이 취한 유일한 조치는 핵 모라토리엄, 즉 핵실험중단뿐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미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완성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실험을 할 필요성이 없어서 취한 조치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한 뒤 한미FTA 개정협정 서명식에 참석했는데 개정협정 내용을 보면, 미국은 엄청난 이익을 얻은 반면 우리는 얻은 게 하나도 없다.
우선 미국은 2021년 1월 1일 철폐할 예정이었던 화물자동차(픽업트럭) 관세를 2041년까지 20년 더 유지하는 걸 얻었다. 또한 미국은 미국산 자동차를 한국에 수출할 때 미국 안전기준(FMVSS)을 만족하면 한국 안전기준(KMVSS)를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는 물량 쿼터도 제작사별로 연간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대폭 늘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얻은 게 하나도 없다. 실제로 한미 FTA 재협상과정에서 한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의 자동차 고율 관세 적용 대상에서 면제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얻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개정에 대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 미국제품의 한국 수출을 늘리는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게 됐다"면서 "양질의 미국산 자동차나 혁신적인 의약품, 그리고 농산물이 한국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하게 될 것이다. 특히 농부들이 아주 기뻐할 것"이라고 자평했을 정도로 미국은 많은 것을 얻었다.
오죽하면 정치권 일각에선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양보를 받기 위해서 한국이 한미 FTA 손해를 자처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겠는가.
이로 인해 가뜩이나 한국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경제가 더욱 위축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여권은 지금 ‘평화가 경제다’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평화는 평화이고 경제는 경제다. 평화 분위기로 경제와 민생 문제를 모두 묻어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
평화는 반드시 획득해야할 가치이지만 그로 인해 국민의 삶이 피폐해져선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급상승한 것은 맞다. 이는 국민이 그의 평화노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추석 민심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컸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걱정, 취업걱정 등으로 밤을 지새운 국민들이 허다하다.
정부와 여당은 ‘평화가 경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은 ‘평화’와 ‘경제’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고용쇼크’ 등 현재의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되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노력에도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쏟는 노력 못지않게 경제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경고하거니와 경제가 무너지면, 평화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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