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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는 최근 '9·19 평양공동선언'과 '9·19 남북군사분야 합의서'는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에 따라 문재인정부는 지난 23일 오전 제45회 국무회의에서 두 합의서에 대한 심의·의결을 거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하는 형식의 이른바 ‘셀프 비준’을 마쳤다.
그러면 법제처는 왜 판문점선언과 달리 평양공동선언에 대해선 국회비준동의가 필요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일까?
법제처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 이행의 성격이 강한데, 판문점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법제처의 ‘국회 동의 필요여부 등 심사결과 자료’를 보면 “(평양선언은) 판문점선언 및 그 비용추계서에 포함되어 있거나 이를 구체화 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한마디로 평양선언은 판문점선언의 후속선언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법제처는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동의를 받는다는 전제를 미리하고, 그래서 평양선언은 국회비준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셈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가 부결되면 이미 대통령의 재가로 ‘셀프 비준’을 마치고 관보게재 절차까지 거친 평양선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판문점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거치고 있기 때문에 평양선언이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라면, 판문점선언을 부결시켰을 때는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뒤늦게 이 같은 문제점을 의식한 김외숙 법제처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전날 국회법사위 종합감사에서 두개의 선언은 ‘별개의 합의서’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는 했다.
아마도 평양선언이 판문점선언에 기초한다고 시인할 경우 이미 셀프비준 절차를 마친 평양선언에 법리적 문제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별개의 합의서’라고 해도 문제가 있다.
두 선언이 별개라면 ‘판문점선언에 내용이 이미 포함돼서 평양선언은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법제처의 논거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즉 ‘별개의 합의서’일 경우엔 법제처 유권해석 자체가 잘 못된 것이어서 그를 근거로 한 평양선언 비준은 법리적으로 위법성을 지적받게 될 것이고, ‘후속 합의서’일 경우엔 판문점 선언 국회비준동의 부결 시 무효가 될 수밖에 없는 딱한 지경에 놓인 것이다.
사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판문점선언은 국회에 계류 중이니 동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비준동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후에 평양선언을 재가했어야 옳았다. 아니면 애초에 판문점선언을 국회에 보내지 말거나 보냈더라도 철회한 후에 대통령이 직접 비준을 했으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그런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손 대표는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선언·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과 관련, 선행 합의인 4·27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 요청도 철회할 것을 요구했었다.
당시 손 대표는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요청을) 철회하고 대통령이 알아서 (비준)하라"며 "왜 국회비준동의를 요청해서 국회에서 논쟁을 일으키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에 대해선) 국회비준동의안을 요청하고, 다음 것(평양선언)은 동의 요청이 필요 없다고 하면 이게 무슨 '이현령비현령'인가"라며 "경제는 어려운데 청와대는 평양선언 (비준)의 법리 논쟁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비준할 문제이며, 판문점 비준동의 (요청) 철회를 요구한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이행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만일 그때 문 대통령이 손 대표의 이런 조언을 받아들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딱한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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