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분권형 개헌’ 깃발 들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6-16 13: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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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유럽 3개국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일정을 마무리한 뒤 스페인으로 출국하기 직전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오스트리아는 이념을 초월한 대연정으로 안정적 정치구조를 이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오스트리아의 힘은 분단의 위기를 극복한 중립국이라는 것에 있다"라며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지만 좌우를 포괄한 성공적인 연립정부 구성으로 승전국들의 신뢰를 얻었고, 이후 10년의 분할 통치 끝에 완전한 통일 국가를 이뤘다"라고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왜 이 시점에 오스트리아를 호평하는 메시지를 낸 것일까?


오스트리아의 정부 형태는 ‘이원집정부제’다.


이원집정부제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은 외치만 담당하고 국무총리는 실질적인 정부 운영을 담당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원집정부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나왔었다.


일단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사이에서 폭넓게 형성돼 있다. 개헌하게 되면 권력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 현행 대통령제도가 유지되는 방식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내각제도 좋지만,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려는 욕구가 있는 만큼,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이원집정부제다. 지난 2017년 2월 8일에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소위원회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로의 전환에 사실상 합의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했었다.


오스트리아가 채택한 이 제도는 대통령은 선거로 선출하되 외치(外治)만 담당하는 국가수반의 상징적인 존재이며, 실질적인 정부 운영은 국무총리가 한다.


문 대통령이 오스트리아를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이광재 의원은 전날 오후 한국기자협회가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20대 대통령 예비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1987년 헌법 체제는 이제 다음 단계로 진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 등에 집중하고 총리가 내치를 책임지는 ‘책임총리제’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역시 “개헌을 통해 대통령은 외교, 안보, 국방을 중심으로 외치를 책임지고 국회가 추천한 총리가 내치를 책임지는 그런 시대를 열어가는 게 좋겠다”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양승조 충남지사는 당내 모든 대선 출마자들이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열어 개헌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개헌 논의에 대해선 이낙연 전 대표나 박용진 의원, 김두관 의원 등도 찬성하는 분위기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정치권의 대표적 개헌론자다. 박 의장은 지난 4일 국회 개원기념식에서 "내년 대선과 지선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헌법 개정의 마지막 시기"라며 "34년 된 낡은 헌법의 옷을 벗고 새로운 헌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오는 21일 예정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개헌 공론화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 그러니까 제왕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지율 1위의 이재명 경기지사는 반대다.


실제로 그는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의 구휼이 훨씬 더 중요한 시기"라며 ‘민생’을 명분으로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한 바 있다.


이처럼 유력 대선주자가 반대하면 개헌 논의는 쉽지 않다. 그 점이 아쉽다.


사실 문 대통령이 좀 더 일찍 분권형 개헌을 추진했더라면, 국민적 공감대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여야 간 협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앞서 개헌을 발의하면서 황당하게도 제왕적 대통령제 골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기만 5년 단임제에서 3년 연장이 더 가능한 ‘4년 중임제’ 개헌을 들고 나왔다가 국회 문턱에서 좌절된 바 있다.


자신이 대통령일 때는 제왕적 권한을 다 누리다가 임기 말에 분권형 개헌을 들고나온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연유다. 그렇지만 분권형 개헌은 필요하다. 87년 낡은 체제를 끝장내기 위한 개헌 논의에 이재명 지사가 주춤거린다면, 윤석열 전 총장이 전면에 나서라.


윤 전 총장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직접 목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폐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특히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그가 분권형 개헌을 들고나온다면 국민이 환영할 것이다. 그것으로 대선은 게임 아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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