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재촉은 지시? 당부?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5-12 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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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수사기관에 장자연ㆍ김학의ㆍ버닝썬 사건의 진상규명을 재촉한 것은 ‘지시’가 아니라 단지 ‘당부’일 뿐이라고 했다.


곽상도 의원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곽 의원이 제기한 민사소송과 관련해 이런 내용의 답변서를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앞서 곽 의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 접대 사건을 무마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와 관련 곽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3월 이 사건의 특별 수사를 지시했다"라며 그해 6월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로 문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했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 자신을 겨냥한 ‘기획 사정’을 지시했고, 이는 법령에 근거하지 않았으므로 위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장자연ㆍ김학의ㆍ버닝썬 사건의 진상규명 지시 배경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수사기관을 상대로 구체적 내용의 수사 지휘를 한 사실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 문 대통령은 이 세 가지 사건에 대해 과거 어떤 발언을 했을까?


앞서 문 대통령은 2019년 3월 18일 세 가지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은 뒤 “검찰과 경찰이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ㆍ비호ㆍ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 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진상규명 재촉 발언이 ‘지시’가 아니라 ‘당부’라는 것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의 지위에서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당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들에 대해 마땅히 하여야 할 진상규명을 당부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등 네 차례나 ‘당부’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진상규명 재촉은 ‘수사지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당시 문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검경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를 하라는 거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지시’일까, 아니면 단순한 ‘당부’일까?


누가 봐도 이는 ‘명백한 수사지시’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지검장 피고인’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도 문 대통령의 지시를 무리하게 따른 탓 아니겠는가.


실제로 수원지검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이성윤 지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이 지검장은 지난 2019년 6월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이모 검사가 허위 사건번호를 부여한 문서로 김 전 차관을 출국 금지했다는 의혹에 대해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수사 중단 외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지검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까지 신청했지만, 지난 10일 수사심위는 ‘기소’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에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지난 11일 이 지검장에 대한 기소를 승인했다.


만일 문 대통령의 김학의 진상규명 발언이 ‘지시’가 아니라 단순한 ‘당부’에 불과했다면, 이성윤 지검장이 그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수사팀에 외압을 가했을까?


이로 인해 이성윤 지검장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윤석열 전 총장의 뒤를 이어 검찰총장이 되려던 욕망이 좌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지검장 자리까지 내어놓아야 할 판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그의 사퇴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형사피고인 신분의 현직 중앙지검장을 맞이해야 할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며 오명"이라며 "누구보다 더 법을 엄격히 지켜야 할 중앙지검장 자리에 형사 피고인 신분이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국민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지검장은 욕망을 내려놓고 더 비참한 말로로 국민 앞에 서기 전에, 직을 내려놓는 도리로 국민께 사죄하고 법의 심판대에 오르길 바란다"라고 주문했다.


백혜련 민주당 최고위원은 여당 의원 중 처음으로 이성윤 지검장의 자진 사퇴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진상규명 재촉 발언은 ‘지시’가 아니라 ‘당부’라는 문 대통령의 주장은 뻔뻔할 뿐만 아니라 최고 지도자로서 너무나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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