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이 이재명 비서실장?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4-23 10: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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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 내 국회의장 후보들이 너도나도 “국회의장이 되려면 '명심(明心, 이재명 마음)'을 명심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떠벌리고 있어 걱정이다.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국회의 대표이자 입법부의 수장으로 대통령,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과 함께 삼부요인을 이룬다. 국가 의전서열도 대통령 다음인 2위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립을 지켜야만 한다. 국회의장이 당적보유 및 상임위 활동이 금지된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런데 국회의장이 되겠다고 손들고 나선 인사들을 보면, 중립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특히‘명심(明心)’ 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국회의장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의 입법부 파견 비서실장을 뽑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실제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경선에서 ‘명심 얻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장 후보군은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가야 한다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도 민주당이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대립하는 사안에서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켜왔던 관례가 22대 국회에서는 깨질 가능성이 있다.


친이재명(친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의원은 23일 “이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도 나라와 국회, 이 대표를 위해 누가 의장이 돼야 하는지 고민해달라”며 출사표를 냈다. 정 의원은 아예 대놓고 “의장이 되면 전임 의장들과 다르게 (여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은 하겠다”라고 했다.


조정식 의원은 "명심(이재명 대표의 마음)은 당연히 저 아니겠냐"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조 의원은 전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명심'의 향방과 관련해 "당연히 내가 (가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와 당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될 때, 싸울 때 제대로 싸우고, 또 성과를 만들 때 제대로 만들어서 국회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진행자가 '국회의장은 중립이냐 아니냐'라고 지적하자 "지난 국회에서 보면 민주당이 배출한 의장인데, 민주당 출신으로서 ‘제대로 민주당의 뜻을 반영했느냐’라는 당원들과 많은 지지자의 불만도 있었다"라며 "그런 부분을 무겁게 생각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보다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먼저 살피겠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것이 소위 말하는 ‘명심’이라고 본 것 같다.


또 다른 국회의장 후보인 추미애 당선인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이들 중 누가 의장이 되더라도 여야가 대립할 때 의장이 중립을 지켜왔던 관례가 깨질 가능성이 크다. 또 22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도 민주당이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이재명 대표의 당대표직 연임을 지지하고 있다. 의장 후보군이 의장 선거의 투표권이 없는 당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의장 선거가 ‘명심 경쟁’이 된 이유는 22대 총선에서 175석을 얻은 민주당에서 압도적 다수인 친명계 의원들의 표가 선거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친명계 의원들은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 도입법안’ 등 야당 주도로 처리할 법안 통과에 협조할 의장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의장 후보들은 이 대표의 뜻을 받아 국회를 운영할 의지를 보여줘야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당이 국회의장·부의장 경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것도 친명계 의장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결선투표제는 친명계 후보가 여러 명 나오더라도 표가 갈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민주당에서 ‘민주’가 사라지고 ‘이재명’만 존재하는 ‘이재명의 당’으로 전락한 것처럼 국회마저 이재명 대표가 독주하는 ‘이재명 방탄 국회’로 전락하는 것이나 아닌지 염려된다.


현재까지 국회의장 도전을 공식 선언한 후보는 6선의 조정식 전 민주당 사무총장·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5선의 정성호 의원이다. 5선 중에는 김태년·우원식 의원이 출마를 고심하고 있고, 박지원·안규백·윤호중·정동영 의원 등도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는 ‘명심’이 아니라 ‘민심’을 듣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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