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잔류’ 윤영찬, 불출마 선언하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1-10 1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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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의 비명계 의원모임인 ‘원칙과 상식’에 속한 의원들이 10일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탈당의 가장 근본적 이유가 “양심 때문”이라고 했다.


비정상 정치에 숨죽이며 그냥 끌려가는 걸 더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에게 사당화 작업을 중지하고 통합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촉구해왔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탈당하겠다고 이미 예고한 상태다.


그런데 어럽쇼?


이날 탈당을 선언한 의원은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 등 3명뿐이다.


‘원칙과 상식’은 원래 윤영찬 의원까지 네 명이지만, 윤 의원은 기자회견 직전 ‘민주당 잔류’ 의사를 밝히며 이탈해버렸다.


이상하다. ‘원칙과 상식’이 줄곧 주장해왔던 민주당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커진 것도 아닌데 윤 의원은 왜 갑자기 당 잔류를 선언한 것일까?


혹시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일까?


그걸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르는데 윤 의원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재명 대표가 지금 물러난 가능성은 현재로선 0%다.


그런데도 윤 의원은 당 잔류 이유에 대해 “민주당을 버리기에는 그 역사가, 김대중 노무현의 흔적이 너무 귀하다. 그 흔적을 지키고 더 선명하게 닦는 것이 제 소임이라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참으로 가관이다.


어제까지는 그런 소임이 없었다가 갑자기 그런 소임이 생길 만큼 당이 큰 변화를 일으키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하룻밤 사이에 당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가 갑자기 당 잔류를 선언했다면, 전날 민주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찬찬히 복기해보니 어제 사건이 있기는 있었다.


이재명 대표가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된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윤리감찰을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


현 부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으로 윤영찬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성남시 중원구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런 그가 감찰을 받으면 자신의 공천이 유리하게 될 것이란 판단에 따라 갑자기 당 잔류를 선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그거 말고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윤영찬 의원은 ‘개혁’으로 포장했지만 ‘공천’ 때문에 ‘원칙과 상식’에서 활동한 셈이다. 그의 이런 행동으로 인해 탈당을 결행한 소신파 의원들의 결단이 훼손당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의 당 잔류선언은 역겹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는 당 잔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표가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과 성희롱 논란을 일으킨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위원장의 징계 여부를 두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대표는 정 의원에게 "현근택은 어느 정도로 할까요"라고 물었고, 정 의원은 "당직자격정지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공관위 컷오프 대상"이라고 답했다.


이에 이 대표는 "너무 심한 것 아닐까요"라고 물었고, 정 의원은 "그러면 엄중 경고. 큰 의미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정 의원이 현 부원장에 대한 강한 징계 수위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가 징계 수위를 크게 낮춘 것이다.


윤리감찰단이 감찰하고 결정하기 이전에 이재명 대표가 스스로 징계 수위를 낮추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건 민주당이 공당이 아니라 사당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다.


따라서 정말 소신파였다면 탈당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게 옳다. 그런데 윤 의원은 그걸 못했다. 공천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 믿고 당 잔류를 선택했으니 정치인으로서 그보다 더 추악한 결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순진하게 당 대표의 감찰 지시만을 믿고 당 잔류를 선택한 그는 버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표가 현근택 변호사의 징계 수위를 낮춘다는 의견을 밝힌 건 그를 공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더라도 윤 의원은 오갈 데가 없다. 자신이 공천에서 배제되는 걸 알고 뒤늦게 탈당하겠다면 손가락질만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 윤 의원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다.

 
즉각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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