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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공천 혁신안과 관련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데도 현실정치를 반영하지 못한 채 '빛 좋은 개살구'만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전략공천 원천 봉쇄'가 대표적이다.
아마도 혁신위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의 조언을 수용한 것 같다.
실제로 혁신위원회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8차 전체회의를 열고 ‘모든 지역구 전략공천 원천 배제’, 즉 ‘예외 없는 상향식 공천’ 등을 담은 4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상향식 공천이란 경선으로 지역구 출마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정치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이 보면 굉장히 공정한 방식 같지만,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보면 이것처럼 기득권을 보호하는 불공정하고 멍청한 방식도 없다.
100% 경선한다면 그것은 무조건 지역구 현역 의원이 유리하다. 특히 기득권을 지닌 중진 의원들의 아성을 신진 정치인이 뛰어넘을 수 없다. 한마디로 ‘경선’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현역과 중진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주는 공천 방식에 불과하다.
중진이라도 교체가 필요한 지역은 경선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인물을 전략적으로 공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인재를 영입하면서 기존 당내 인사와 경쟁을 제안하면 입당을 주저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영입 대상자들을 끌어들일 수가 없다. 따라서 새로운 영입 인재를 배치해야 하는 지역은 전략적인 공천이 필요하다.
특히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지역구 등 상대의 거물급 인사를 겨냥해 맞춤형 후보를 내세울 필요성이 있거나 당내 중진 인사들이 ‘험지 출마’라는 결단을 내리면,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전략공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경선을 감수하며 험지에 출마하는 것보다 무소속으로 기존 지역구에 출마하는 게 당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인사들에게는 전략공천의 길을 열어주는 게 맞다.
그런 유익한 전략공천마저 모두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전 지역구 100% 경선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멍청한 짓이다.
그런데 왜 혁신위는 이 같은 공천 혁신안을 제시한 것일까.
혁신위가 ‘대통령실 출신 인사, 전략공천 원천 배제’라는 문구를 혁신안에 명시했다고 한다.
내년 총선에 대통령실 인사들이 대거 차출될 것으로 보이자 이런 방안을 명시한 모양인데 이건 환영할만하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걸 방지하기 위해 전 지역구 100% 경선 원칙을 제시한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집을 태우는 격’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도 혁신위가 이런 멍청한 방안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김무성 전 대표의 조언이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혁신위는 회의에 앞서 김무성 전 대표와 만났다. 김 전 대표는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이 이렇게 약해지고 어려움을 겪고 보수가 분열된 원인은 잘못된 공천”이라며 “이번 혁신위는 정당 민주주의를 정착할 수 있는 상향식 공천을 당에 권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100% 상향식 공천은 김무성 전 대표가 추진하려던 방식이다. 그는 새누리당 대표 시절에 100%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며 이른바 ‘옥쇄 들고 나르샤’라는 기괴한 일을 벌였고, 그로 인해 압승이 예상되던 총선을 망쳐 제1당 자리를 민주당에 내어준 바 있다.
그런 잘못된 공천을 되풀이하려는 김무성과 그걸 수용하려는 혁신위의 모습이 그리 똑똑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전략공천은 원천 봉쇄할 것이 아니라,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에 대해선 예외 없이 100% 경선을 못 박더라도, 험지 출마자와 새로운 인재영입 대상자 등 극히 부분적으로라도 전략공천의 길은 열어 놓아야 한다.
다만 혁신위가 엄격한 컷오프(공천 배제) 기준의 적용을 요구한 것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 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 금고 이상 전과자는 전부 공천에서 배제하자는 내용은 당 지도부가 즉각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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