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한동훈의 길을 가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1-22 11: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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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여당 구원투수로 등판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명 한 달 만에 대통령실과 여당 주류 인사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김경율 비대위원에 대한 ‘사천 논란’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둘러싼 당의 대응 때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마디로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정말 가관이다.


국민의힘이 지금과 같은 비대위 체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대통령실과 여당 주류 세력이 전당대회 당시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히는 등 무리하게 김기현 체제를 만든 탓이다. 그렇게 탄생한 김기현 체제는 욕심 때문에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당시 귀책사유에 따른 무공천 방침을 철회하고, 심지어 귀책사유 당사자를 공천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로 인해 민심은 여당에 등을 돌렸고, 선거는 엄청난 격차로 참패했다.


그러자 김기현 체제를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던 주류 세력들이 앞장서서 김기현을 비토하더니 급기야 ‘한동훈 비대위원장 추대’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직을 사퇴하는 용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들이 이번에는 한동훈을 끌어내리기 위해 또 ‘완장 질’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 노릇인가.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의 승리 등 잘 나가던 국민의힘을 이 지경으로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지금의 여당 주류 세력이다. 그들이 무능한 김기현 체제를 만들었고, 그 결과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한동훈마저 물러나라고?


총선 승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이 찬 ‘완장’에 도취 된 그들의 이 같은 모습이 역겹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당무에 관한 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맡겨 두는 게 바람직하다. 법적으로도 당무에 직접 개입해선 안 된다. 조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다만 한동훈 위원장은 ‘여당 대표’라는 무게를 의식하고 행보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를 ‘깜짝 발표’한 것은 경솔했다.


완장 찬 당 주류 세력들에게 ‘자기 정치용 사천’이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 걸 필자는 안다.


시스템상 그렇게 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직 그 지역구가 ‘전략 지역’으로 결정된 것도 아니다.


전략 지역이 아니라면, 경쟁자가 있을 때 경선을 하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김경율 비대위원이 마포을에 출마를 원하더라도 경선을 거쳐야 한다. 그걸 결정하는 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아니라 정영환 광천관리위원장이다. 당 주류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사천 논란’을 사퇴 요구 이유로 꼽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실상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둘러싼 당의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게거품 물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난하며 사퇴를 압박하는 완장 찬 사람들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명품백 수수 사건이 ‘공작에 의한 몰카 사건’이라는 본질을 한동훈 위원장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김건희 특별법이 약자인 한 여성을 ‘마녀사냥’ 하기 위한 악질적인 법이라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은 타당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김건희 여사의 사과 문제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만큼 대국민 사과는 선거 전략상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온갖 논란에도 단 한 번의 사과가 없었다거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혜경 여사 역시 법카 논란 등 온갖 구설수에도 사과가 없었다는 이유로 김 여사 역시 사과해선 안 된다는 강성 지지층의 헛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 민주당이 개딸들 때문에 망하듯 여당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한동훈의 길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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