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추모’를 빙자한 ‘李 구하기’?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11-10 1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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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뜬금없이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그전에 희생자 명단과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논란이 된 것은 지난 7일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인 문진석 의원이 받은 텔레그램 문자가 노출되면서다. 민주연구원 이연희 부원장이 보낸 문자에는 “유가족과 접촉을 하든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체 희생자 명단, 사진, 프로필을 확보해야 한다”라며 “그걸 공개하는 기본”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겼다.


국가적 비극을 정쟁 도구로 활용하고 ‘세월호 참사’ 때처럼 추모 정국을 만들어 이재명 리스크에 따른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술수라는 비판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문진석 의원은 "제게 보내온 메시지를 읽은 것뿐"이라면서 "해당 메시지는 개인 의견이며, 저는 텔레그램 메시지와 관련해 분명하게 거부의 뜻을 전했다"라고 해명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도 당시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희생자 명단 공개와 관련해 당 차원의 논의가 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전혀 이뤄진 바가 없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그런 제안을 누군가 했다면 부적절한 의견으로, 그런 의견을 당내에서 논의할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가 느닷없이 9일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하고 애도를 하느냐”라며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함께 ‘핼러윈 참사’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한 정의당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10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 출연해 "유족들의 총의가 모여서 진행이 된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정치권이 앞서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것은) 슬픔에 빠진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지금은 정치권에서 영정과 명단 공개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전날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 문제는 유족들이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유족들 동의를 구하는 전제 아래 말을 했지만, 명단을 다 공개하자는 얘기를 외부인이 먼저 얘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부적절한 의견”이라며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못을 박았고, 민주당에 우호적인 정의당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마저 “적절하지 않다”라고 선을 긋는데도 왜 이재명 대표는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처럼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정진상 당 대표 정무실장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상황에서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다.


10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6명가량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 ‘사법리스크가 있다’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공정㈜에 의뢰해 지난 8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정례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 국민 58.0%가 "'사법 리스크'가 있다"라고 답했다. 반면 "'사법 리스크'가 없다"라는 응답은 33.6%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 8.3%).


권역별로 살펴보면 모든 권역에서 "'사법 리스크'가 있다"라는 응답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강원·제주에서 68.2%로 가장 높았으며, 대구·경북(66.2%), 대전·세종·충남북(64.2%), 부산·울산·경남(63.9%), 서울(57.5%), 경기·인천(51.9%) 순으로 뒤를 이었다. 심지어 민주당 텃밭인 광주와 전남·북에서도 "'사법 리스크'가 있다"라는 응답이 50.4%로 "'사법 리스크'가 없다"(39.5%)라는 응답보다 높았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는 가족을 잃고 비탄에 빠진 유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기보다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의 칼끝을 피하는 게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어느 원외 정당의 대표는 “지금 정치권의 진정한 애도는 침묵”이라고 했다.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아픔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희생을 정쟁의 도구로 삼겠다는 얄팍한 잔꾀를 부려선 안 된다. 이재명 대표의 요구는 ‘추모’를 빙자한 국민의 ‘관심 돌리기’이자 사실상 ‘이재명 구하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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