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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갤럽·한국리서치 등 34개 국내 여론조사 업체가 회원인 한국조사협회(KORA)가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일종의 ‘자정 선언’을 했다.
정치선거 여론조사 전화면접조사 응답률을 최소 10% 이상 넘기겠다는 것.
이는 그동안 응답률이 1~2%대에 불과한 여론조사가 공공연하게 공표되었으나 그것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여론조사 업체들이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 때만 되면 값싼 정치선거 여론조사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그로 인해 응답자(국민)에겐 외면을 받아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깎아 먹는 일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그런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운동 도구로까지 오·남용되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응답률 5% 미만 조사는 공표를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그런 연유다.
특히 엄연히 오차범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소수점 이하 조사 결과를 표기하는 것도 문제다.
그 정도의 수치는 통계학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데도 소수점으로 표기해 마치 정확 수치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영국 등 소수점 아래까지 쓰는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
이에 따라 조사협회는 소수점 이하 조사 결과를 쓰지 않고 반올림해 정수로만 표기하기로 했다니 상당한 진전이다.
특히 조사협회 회원사들은 조사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만 시행하며 ARS(자동응답조사)는 물론 전화면접조사와 ARS를 혼용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불특정 다수에 대량 전송해 녹음 또는 기계음을 통해 조사하는 ARS는 과학적인 조사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ARS 방식을 퇴출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중앙선관위 산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이 90개 가까이 되는데 대부분이 ARS 조사를 하고 있다. 실제 ARS 조사 중 응답률이 1%가 안 되는 것도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그들이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실제로 이택수(한국정치조사협회 회장) 리얼미터 대표는 “22대 총선 시장을 놓고 중소형 ARS 여론조사를 퇴출하려는 대형업체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들의 반발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ARS는 안심번호가 없었다면 도태되었을 테지만 안심번호로 양질의 표본을 확보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ARS 여론조사 방식을 퇴출하기보다는 ‘법정 응답률’을 못 박아 ARS 조사라도 응답률일 일정 수준 이상이면 공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
법정 응답률을 한국조사협회가 자정 선언한 것처럼 10%로 해야 할지. 아니면 장제원 의원의 개정안처럼 5%로 할지는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여론조사를 빙자한 ‘여론 왜곡’ 현상만큼은 막아야 한다.
따라서 조사협회의 자정 선언에 발맞춰 이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나서서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엉터리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그로 인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건 바른길이 아니다.
국민도 이를 단순히 여론조사 업체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이 문제가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정치권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켜보는 국민의 눈을 무섭게 느껴야 정치권이나 여론조사업체들이 엉터리 논리로 자신들을 대변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여론조사 방식이 무엇이든 일정 수준 이상 접촉률·응답률을 만족하지 못하면 공표를 금지하는 조항은 필요하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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