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비례 의원제도를 없애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3-14 13: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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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비제)의 취지를 왜곡하고 위성 정당을 안착시키기 위한 거대양당의 ‘의원 꿔주기’ 추태가 반복되고 있다. 기형적 비례대표제에 대한 비판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과연 이런 연비제를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사실 연비제는 소수정당은 물론 직능대표, 청년·여성·사회적 약자 등의 원내 진출을 돕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데 지금의 연비제는 어떤가.


거대양당이 모두 비례용 위성 정당을 만들면서 그 취지는 퇴색하고 말았다.


오히려 소수정당에 돌아갈 몫은 축소되고 거대양당의 기득권만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연비제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 건 단식 투쟁을 벌였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여야 모두 위성 정당을 만들고,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진보당 등과 연합해 ‘더불어민주연합’을 만든 것을 보고는 “최악”이라며 “차라리 병립형만도 못하다”라고 한탄했다.


더구나 비례대표제는 전문성을 지닌 인물이 국회에 들어와 입법활동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지금의 비례대표는 어떤가.


전문성을 지닌 인물보다는 정당 지도부에 충성하는 강력한 정파성을 표출하는 인사들이 공천받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 위성 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선 ‘종북성향’이라는 의심을 받는 인사들이 공천받았다가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시민사회 몫 비례후보를 추천하는 연합정치시민회의는 ‘반미’ 논란으로 사퇴한 후보 대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던 후보를 재추천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시민사회 측은 한미훈련 반대 및 진보당 활동 전력 등이 논란이 돼 사퇴한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과 정영이 전국농민회총연맹 구례군농민회장 대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 간사인 이주희 변호사와 서미화 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각각 재추천했다. 이 가운데 이 변호사는 NL(민족해방) 계열 운동권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전국 학생위원장을 지냈고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하며 국가보안법폐지국민공동행동에서 활동했던 전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13일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현역 의원을 파견하기 위해 김예지 의원 등 비례대표 의원 8명을 제명하기로 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비례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소속 정당을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자동으로 상실하지만, 당에서 제명되면 의원직을 유지한 채 다른 정당으로 옮길 수 있다.


바로 이런 허점을 악용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비례대표 의원 제명이라는 똑같은 수법으로 비례 위성 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소속 의원들을 넘겨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야가 위성 정당에 코미디 같은 ‘의원 꿔주기’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에 기록되는 정당 기호 순번은 현역 의석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원내 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기 때문에 1·2번 없이 3번부터 기호가 시작한다.


국민의힘은 국민의미래가 비례대표 투표지에서 ‘기호 4번’을 받기 위해 의원 꿔주기를 한 것이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국민의미래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의원을 파견해 더불어민주연합이 기호 3번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미 당적을 바꾼 더불어민주연합 대표 윤영덕 의원을 포함해 최소 9명 이상을 꿔줄 계획이라고 한다.


거대양당이 이처럼 온갖 꼼수를 부릴 수밖에 없는 제도라면 이 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요구한 대로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게 낫다.


위성 정당의 출현을 막지 못하고 전문성보다 정파성을 공천의 중요 잣대로 삼는 비례대표라면 차라리 비례 의원 제도 자체를 아예 폐지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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