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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조직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대선판에 뛰어든 손학규 무소속 후보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선언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 하에선 현실적으로 개헌을 주도할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어서 출마했다는 것이다.
앞서 손 후보는 지난 2016년 10월 20일 전남 강진에서 올라와 대선 출마 선언할 때에도 "87년 헌법 체제가 만든 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 지난 30년 동안 조금씩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리더십은 이제 완전히 실종되었다"라며 "6공화국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제가 무엇이 되겠다는,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출마한 것이 아니라 제왕적 권한을 거머쥔 대통령 자리를 없애기 위해서 출마했다는 것이다.
이번 출마 역시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헌 논의를 끌어내기 위한 충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소속의 한계로 인해 그의 목소리는 그대로 묻히는 듯 보였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 진영으로 나눠진 대선판에서 제3 주자인 그의 목소리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안고 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개헌론이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인 윤석열 후보가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더 유지되어선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 윤 후보는 지난 1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장관들과 긴밀한 소통을 해 가면서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과 장관의 소통을 보좌하는 내각 중심으로 (국정 운영하겠다)"라고 밝혔다.
다만 윤 후보는 개헌에 대해선 "대선을 준비하면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치인은 내각제를 좋아하지만, 일반 국민은 대통령제를 많이 선호한다"라는 말로 한발 물러섰다.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개헌 이슈를 띄우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 점이 아쉽지만,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불씨’를 키운 건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다.
앞서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거의 없는데 이 제도(대통령제)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가져와야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 권한이 막강해서 청와대만 들어가면 사람 자체가 이상해지는 경향이 있다"라며 "윤 후보가 가장 강조하는 게 헌법인데, 헌법 정신에 맞게 내각을 제대로 기능하게 해줘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대통령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손학규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김종인 위원장의 의견에 환영 의사를 전하며 "윤석열 후보도 진정 낡은 정치구조의 개혁을 바란다면 '청와대 축소'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대통령제 폐지와 의회 중심의 합의제 민주주의 체제로의 개헌을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해선 "개헌은커녕 권력 구조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라며 "대통령제의 폐해를 익히 알고 있을 텐데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마음껏 누리겠다는 생각밖에 없다는 말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대통령제 하에선 현실적으로 개헌을 주도할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라며 "헌법개정을 통해 끝없는 막장 대결의 투쟁 정치를 끝내고 국회에서 연합정치를 확립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승자독식으로 극한투쟁을 초래하는 독단의 정치를 끝내고, 협치가 가능하도록 개헌을 약속하라는 것이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대통령제는 한국 외에 미국·프랑스·멕시코·폴란드·칠레 등 6개국뿐이다. 우리도 87년 낡은 체제를 종식하고, 독일과 같은 선진국의 정치모델을 도입하는 개헌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내친김에 홍준표 의원에게도 한마디 해야겠다.
홍 의원은 김 위원장의 내각제 필요성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내각제 총리가 목표인 사람"이라고 깎아내렸다. 다분히 개인적인 악감정이 작용한 발언으로 옳지 않다.
그는 대선후보 시절에 '헌법개정에 대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입장'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상생과 타협의 정치로 바꾸겠다"라고 공약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홍준표와 지금의 홍준표는 다른 사람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말 바꾸기의 달인’이라는 이재명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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