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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를 향해 “채상병 특검법 찬성 표결을 당론으로 확정하라”고 압박했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박찬대 민주당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동훈 대표는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결 찬성 표결을 당론으로 확정함으로써 민심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요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거대 야당의 강행처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포기하지 않고 해병대원 수사 은폐에 대통령실이 개입했다면서 22대 국회에서 특검법 일부 내용을 수정해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정쟁용 특검법'이라며 정면 반발하고 있다. 다만 한동훈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공정한 제3의 기관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이른바 ‘제3자 특검법’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민주당이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야당은 아마도 한동훈 대표가 선출되면 여당도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할 것으로 여긴 모양이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특별검사 임명권을 사실상 민주당이 행사하게 돼 있다.
특별검사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른 헌법상 핵심 요소임에도, 후보 추천권을 민주당이 독점하게 해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특히 고발 당사자인 특정 정당이 사실상 특별검사를 선택한다는 점도 문제다. 고발인이 수사할 검사나 재판할 판사를 선정하는 것과 같은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우리 헌정사에서 여·야 합의 없이 야당에만 특별검사 후보 추천권을 부여한 전례도 없었다.
이는 한 대표가 제시한 ‘제3자 특검법’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한 대표가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그리고 당론을 결정하는 건 엄밀하게 말하면 당 대표의 권한이 아니라 원내대표의 권한이다.
이른바 ‘이재명 일극 체제’의 민주당에선 당 대표가 마음대로 당론을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국민의힘은 ‘한동훈 일극체제’가 아니다.
민주당에선 박찬대 원내대표도 사실상 이재명의 낙점으로 그 자리에 오른 만큼, 이재명이 대표가 되면 그의 명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의 원내대표는 당 대표와 ‘투톱’을 이루는 지도부의 핵심이 아니라, 단지 당 대표의 의견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다르다. 당 대표 말 한마디에 원내대표가 움직이는 그런 체제가 아니다.
당론은 의원총회에서 결정한다. 따라서 의원들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의견이 다를 때 원내대표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당의 원칙이다. 특히 국회 운영에 관해서는 교섭단체 대표인 원내대표가 최고의 권한과 책임을 갖도록 당헌에 명시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가 그 원칙과 당헌을 위배하는 독선적 결정을 할 리 만무하다.
한동훈 대표는 자신이 제안한 ‘제3자 특검법’마저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당내 절차에 따라 논의 과정을 거쳐서 결정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하물며 민주당이 발의한 그런 엉터리 같은 특검법을 한동훈 대표가 논의 없이 받아들이겠는가.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배승희입니다’에 출연, ‘채상병 특검법’ 절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 국민의힘은 지금 민주당과 달리 여러 가지 주요 현안에 대해서 당내 활발한 토의를 통해서 민주적으로 결정이 되고 있다. 민주당처럼 이재명 대표 한마디에 전체 의원이 다 이렇게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어제 한동훈 신임 대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마 그렇게 논의 과정을 통해서 결정될 것이다.”
한마디로 ‘일극 체제’의 민주당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번지수를 잘못짚었다는 것이다.
한동훈이 당 대표가 되면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이 통과될 것이라고 믿었다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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