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 민주당엔 호재?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1-04 13: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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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방문 일정 직후 6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왼쪽 목 부위를 습격당했다.


극단적 ‘혐오의 정치’의 칼날에 야당 대표가 쓰러진 것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수사당국은 그의 범행 동기와 공모 여부 등을 철저히 수사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정치테러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엄하게 ‘살인미수죄’를 적용해 중벌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극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테러 사건이 민주당에는 호재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당장 민주당 분열의 시간을 늦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이재명 피습 사건으로 이낙연 전 대표가 준비하는 신당 창당 일정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비주류 혁신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도 탈당 등 결단을 알리는 기자회견 일정을 보류해야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탈당이나 신당 창당이라는 큰 틀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당 창당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당장 민주당을 탈당하는 것은 자칫 국민적 공분을 살 수 있는 만큼, 결행하기 쉽지 않게 됐다.


이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가 4일 “제1야당 대표 피습이라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데 이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탈당과 관련한 얘기를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이유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전날 "(이낙연 전 대표가 창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창당이 아무리 빨라도 15~20일은 걸릴 텐데, (이 대표) 회복 시점에 나가는 것도 이상하다.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 비명계 4인방의 모임 '원칙과상식' 소속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원욱 김종민·윤영찬·조응천 의원이 소속된 원칙과상식은 애초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에게 최후 통첩할 예정이었으나 이 대표 피습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말하는 최후통첩이란 무엇일까?


이원욱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저희는 중재안을 바라지 않는다"라며 "통합 비대위밖에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즉 통합비대위를 구성하지 않으면 탈당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통합비대위를 구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앞서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인근 식당에서 전격 회동했지만,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의 통합 비대위 구성을 거부한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칙과 상식 4인방 역시 탈당을 결행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분열의 시계를 이재명 피습 사건이 멈추게 했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에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된 것이다.


1월에 예정된 이재명 대표의 재판 지연이 불가피해졌다는 점도 민주당에는 호재다.


실제로 이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에서 3건의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데 오는 4월 10일 총선 전 1심 판결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당장 다음 주 열릴 예정이던 이 대표의 재판 2건이 연기됐다.


특히 신속한 판결이 예상됐던 ‘검사사칭 위증교사’ 사건의 재판이 미뤄졌다. 이 사건은 사실관계가 단순하고 증거도 명확해 4월 총선 전에 1심 판결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흉기 피습을 당한 이 대표가 병원에서 회복치료 중이어서 법원 출석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오는 8일로 예정됐던 공판기일을 22일로 미루었다. 형사 사건의 피고인은 첫 공판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같은 재판부에서 매주 화요일과 격주 금요일 진행했던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 사건도 9일로 예정된 공판기일을 연기하고 향후 일정 등 절차를 협의하기 위한 공판준비기일을 12일에 열기로 했다. 이 대표 측이 회복치료 등을 이유로 요청하면 재판 일정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한 괴한의 정치테러가 정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셈이다. 그를 엄벌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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