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에게 묻는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5-09 13: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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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일각에서 차기 대통령 출마자는 대선 1년 6개월 전까지 모든 주요당직(상임고문 제외)에서 손을 떼야 하는 당권·대권 분리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 의원과 김태호 의원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민의힘 당헌 5장 71조에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상임고문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선거일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규정을 적용하면 오는 7~8월 선출될 새 당 대표는 차기 대선(2027년 3월 3일) 출마를 결심할 경우 임기 2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2026년 9월에 중도사퇴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대권 욕심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당권에 도전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행 당헌대로라면 이번 전대 출마자는 대권에 출마하지 않을 사람이 나설 수밖에 없다.


안철수 의원과 김태호 의원이 이 당헌 개정을 요구하는 건 당권과 대권을 모두 가져가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 규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5년 11월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 당헌 개정으로 확정됐고, 이듬해 6월 박근혜 대표는 이 규정에 따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측에서 박근혜가 대표직을 유지하면 불공정 경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요구했으며, 박근혜는 기꺼이 이런 요구를 수용했다.


물론 그 결과 박 전 대통령은 무난히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는데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런 역사가 있는 이 당헌은 지금까지 20년간 아름다운 보수 정당의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는 ‘당 총재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퇴행적 요구로 결코 받아들여선 안 된다.


당헌은 국가의 헌법과도 같은 것이다. 법률과 비슷한 성격의 당규와는 달리 그 개정 절차가 매우 엄격하다.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취지다.


그게 맞다. ‘당권과 대권 분리’라는 보수 정당의 아름다운 ‘박근혜식 전통’은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전대 등판론이 탄력을 받는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묻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애초 계획된 6월 말 7월 초보다 늦어진 8월 초에 열리는 안이 유력해지면서, 총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한동훈 등판설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한 전 위원장에게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옅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영수회담 비선 논란으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당원들의 여론이 흔들린다는 점도 한 전 위원장의 재등판엔 호재란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은 사퇴 후 비대위원들과의 만찬을 했고 지난 3일엔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김형동 의원, 당 사무처 당직자 등과 저녁 식사를 하는 등 정치재개 행보를 시작했으면서도 정작 당권 도전에 대해선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게 혹시 ‘당권과 대권 분리’ 규정을 의식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그래선 안 된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 이후에 당을 위한 어떤 역할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아주 무책임한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총선 참패로 여당은 위기에 직면했다. 여당을 위기에서 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 역할을 위해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하시라.


그리고 당 대표가 되면 다른 정치적 욕심 때문에 중도 하차하는 일 없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당 대표직을 성실히 수행해 2년 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겠다는 약속을 하시라.


한동훈 전 위원장에게 다시 묻겠다.


정치를 계속하실 것인가. 하시겠다면 전대에 출마하시라. 그리고 당의 ‘구원투수’가 되시라.


다만 당 대표로 선출되면 중도 하차 없이 모든 임기를 마치겠다고 국민과 당원 앞에서 공개적으로 약속하시라. ‘선당후사’의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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