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의 뒤늦은 반성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5-20 1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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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비가 오면 우산 들고 마중 나와 주시고
눈이 오면 넘어질까 걱정을 하시네
사랑으로 안아주고 기죽을까 감싸며
울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신 할무니.
가수 김호중 씨의 ‘할무니’라는 노래 가사 일부분이다.


제목을 “할머니”가 아닌 “할무니”로 표기한 것은 어린 시절, 우리는 그리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면 할머니의 무게는 훨씬 무거울 것이다.


필자가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이유는 노랫말이 아름답고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아련한 탓이다. 이 노래를 부른 김호중 씨가 그런 사람일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음주운전과 뺑소니 의혹, 증거 인멸,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을 받는 김 씨는 음주운전 사실을 전면부인하다가 사고 열흘 만에야 뒤늦게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다.


실제로 김호중은 지난 19일 창원 공연을 마친 뒤 소속사 ‘생각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는 음주운전을 했다"라며 "크게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의 사과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 과정도 팬들이 심한 배신감을 느낄 만큼 추악했다.


김 씨는 지난 9일 오후 11시 40분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도로에서 반대편 도로의 택시를 충돌하는 사고를 낸 뒤 달아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사고후 미조치 등)를 받는다.


그런데 사고 3시간 뒤 김 씨의 매니저인 30대 남성이 경찰을 찾아 자신이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사고 직후부터 운전자 바꿔치기 등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 김씨가 연루됐다면,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사회적 약자에게 대신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잘 못을 저지른 셈이다.


그러나 운전자 바꿔치기 의혹이 제기되자 김 씨는 사고 17시간 뒤인 다음날 오후 4시 30분께 경찰에 출석해 자신의 운전 사실을 시인했다. 그때라도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그를 향한 비난은 조금 수그러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유흥주점에 방문해 술잔을 입에 댔을 뿐 술은 마시지 않았다"라며 줄곧 음주 사실을 부인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사고 당일 강남의 한 스크린 골프장에 소속사 대표와 래퍼 출신 유명 가수 등 4명과 머물렀고, 이들 일행은 이곳에서 맥주를 주문해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유명 개그맨과 저녁 식사를 하러 들린 인근 식당에서도 소주 7병과 맥주 3병을 마시고 유흥주점 관계자가 모는 차를 타고 유흥주점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김 씨는 3차까지 음주를 한 셈이다. 경찰은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김씨가 사고 전 술을 마신 것으로 판단된다는 소변 감정 결과를 받기도 했다.


이런 음주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압박을 느껴 결국 자신의 운전 사실과 음주 사실을 모두 시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더라도 뺑소니를 치지 않았더라면 벌금형 정도에서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을 만큼 사건이 너무 커져 버렸다.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제거한 것은 증거 인멸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한 것은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는 만큼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김 씨에게는 그런 법적인 처벌도 처벌이지만 그를 아끼던 팬들이 돌아서게 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잃어버린 셈이다. 자업자득이다.


이런 일들은 정치권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이른바 ‘아빠찬스’ 의혹이 불거졌을 때 ‘모르쇠’로 일관하며 전면 부인했다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제 최종 대법원 판결만 남겨둔 딱한 처지에 놓였다. 당시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선처를 구했더라면 벌금형 정도로도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대장동 개발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故) 김문기 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전면 부인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는 피의자 신분이 되고 말았다. 역시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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