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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의 오찬 제안을 거절하기 전에 총선 전 함께 활동한 전 비대위원들과 만찬 회동을 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더니 24일에는 급기야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파부침주는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항우가 출진에 즈음하여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사용하던 솥을 깨뜨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항우의 군대가 막 장하를 건넜을 때였다. 항우는 갑자기 타고 왔던 배를 부수어 침몰시키라고 명령을 내리고, 뒤이어 싣고 온 솥마저도 깨뜨려 버리고 주위의 집들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3일분의 식량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이제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마저 없었으므로, 병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파부침주’라는 단어는 김규완 CBS 논설실장이 이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서 사용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위원장의 관계를 ‘박근혜와 유승민’, ‘안철수와 이준석’의 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파부침주까지 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행이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이 심리적으로 멀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우처럼 먹던 밥솥을 깨고 돌아갈 배까지 침몰시킨 정도는 아니라니 갈등이 봉합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필자는 김규완 실장의 이런 견해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김 실장은 지난 16일에 있었던 전 비대위원들과 만찬 과정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하게 전달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그날 만찬을 소집하고 주재한 사람은 한동훈 전 위원장이 아니다. 총선 전에 한 위원장과 함께 활동했던 비대위원들이 모여 있는 텔레그램 단톡방에서 장서정 전 비대위원이 갑자기 “밥 한번 먹자”라며 번개 모임을 제안했고, 지나친 피로로 사실상 번아웃(Burnout) 상태에 놓인 한 전 위원장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불가피하게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8명이 모인 그 자리에서 한 전 위원장은 과거 검찰에서 좌천됐던 때와 같은 공백기를 거친 경험이 있기에 “이런 시간에 익숙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내공을 쌓겠다”라고 했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말하는 것까지 귀찮아하는 표정이었고, 결국 그는 1시간 반 정도 밥만 먹고 일찍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의 만찬을 거절한 것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결별 수순’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주변에서 두 사람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한동훈 위원장 본인 스스로 밥 먹을 기분이 나지 않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멀어져야 정치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정 위원장은 그의 말을 따라서는 안 된다.
최소한 보수 진영이 분열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홍준표 대구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등과 함께 유력한 여권 대선 주자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윤 대통령과 선을 긋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총선 주요 패인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해도 내부 분열은 피해야 한다. 보수 진영 전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권 지지층이라면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갈등을 부채질해선 안 된다. 한 몸이 되어 국회를 틀어쥐고 있는 거대 야당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 관계까지 해소하라는 건 아니다. 보수 진영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당이 대통령실을 견제하고 견인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때로는 따끔하게 회초리도 들어야 한다. 야당보다도 더 가혹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가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다만 그런 모습이 의도적인 거리 두기로 비치는 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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