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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터져 나온 한동훈 후보의 “나경원 공소 취소 요청” 폭로는 과연 한 울타리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른바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 분위기가 굳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그런 자해성 폭로를 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17일 CBS 주관 국민의힘 전당대회 4차 방송토론회에서, 한동훈 후보는 자신이 법무부 장관일 때 나경원 후보가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공소 취하를 부탁했다고 폭로한 것.
나경원 후보가 한동훈 후보를 공격하자, 한 후보가 이를 맞받아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당시 나 후보가 “이재명 대표를 구속기소하겠다고 했는데, 체포 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책임 느끼십니까? 안 느끼십니까?”라고 몰아세웠다.
이에 한 후보는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법무부 장관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말씀 계속 반복하시던데요. 법치에 대한 시스템을 잘못 이해하고 계시네요. 아무리 정치라 하더라도 좀 몰상식한 얘기 같아요”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나 후보가 “몰상식이요? 당연히 영장을 청구했다면 잘 발부될 수 있도록 챙겨보는 것이 법무부 장관의 업무 아닙니까?”라고 했고, 이에 한 후보는 “법무부 장관이 야당 대표의 수사에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위험한 주장 하시는 거예요?”라고 반문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문제는 한 후보의 이어진 발언이다.
한 후보는 “나 의원님께서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하신 적 있으시죠?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제가 그럴 수 없다고 말씀드렸고요. 그런 식으로 저희가 구체적 사안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은”이라고 했다.
아무리 자기방어가 필요했다지만, 굳이 이런 폭로까지 해야만 했을까?
패스트트랙 사건이라는 게 뭔가.
나경원 후보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때인 2019년 4월,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려고 국회 안에서 몸싸움을 벌여 국회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자유한국당 의원 23명, 민주당 의원 5명과 함께 이듬해 1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 재판은 4년 넘게 진행 중이다.
그러면 나 후보는 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공소 취소 요청을 한 것일까?
나 후보는 “패스트트랙 공소 문제는 대한민국 법치주의와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원에서 했던 충언”이라고 했다.
사실 여당 전 원내대표가 법무부 장관에게 ‘개별 사건’에 대한 공소 취소를 부탁한 것은 적절치 않다. 일반인은 이런 것을 부탁한다는 걸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경원 개인사건’이 아니라,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23명이 연루된 사건으로 ‘여당 차원의 사건’이다. 더구나 판사 출신인 나 후보는 평소에도 주변에 이 사건이 ‘공소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그런 자신의 견해를 여당이 된 이후에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은 ‘청탁’이라기 보다는 ‘소신’을 피력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후보가 이걸 굳이 폭로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결선투표에서 자신과 맞붙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후보가 자신을 공격하는 걸 막기 위한 ‘무기’로 여겼을 것이다.
한 후보는 법무부 장관 때에도 국회 법사위 등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질문을 받으면, 거꾸로 해당 야당 의원의 과거 행적 등을 들추며 역공을 펴는 장면을 숱하게 보여왔다.
그런 모습으로 여당 지지층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고, 오늘의 한동훈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당 사람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과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 패스트트랙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삭발까지 했던 김태흠 충남지사는 패스트트랙 재판으로 인해 아직도 고초를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이번만큼은 한 후보가 나경원 후보와 당원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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