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문재인과 다른 선택을 한 尹…왜?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3-21 14: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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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한일관계는 정말 쉽지 않은 문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쉬운 게 아니다.


국민 사이에 팽배해 있는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 탓이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서, 한일기본조약으로 청구권자금의 수혜를 입은 한국의 국내 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으로 제3자 재단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금을 대납하는 방식의 외교적 해법을 제시했다가 야당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건 이런 연유다.


이른바 ‘당 대표 사법리스크’로 전전긍긍하던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반일 감정을 부추기며 이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건 그런 국민의 감정을 이용해 사법리스크를 정면 돌파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런 민주당의 전략이 통했는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와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동반하락 추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이번 발표는 우리가 주도한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했다.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정부가 최종안 발표를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 조치가 당장 임박한 상황인 데다가 일본이 65년 청구권 협정과 자국 내의 최고 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들면서 협상이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 자산 압류 또는 양보 외에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타국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고, 다른 대안이 없기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위안부 합의는 문제가 있다”라며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재협상을 주장해 일본의 사과를 받기 더 어렵게 된 측면도 있다.


실제로 기시다 총리는 아베 내각 시절 외무대신으로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는데, 한국이 합의를 뒤집어서 본인도 크게 욕을 먹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통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윤 대통령은 21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라며 “한일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 함께 노력해 함께 더 많이 얻는 ‘윈윈’ 관계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하여,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라면서 “하지만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라며 “이제 한일 양국 정부는 각자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일관계 정상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각자 스스로 제거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해제하기로 했다. 나아가 한일 정부는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리스트) 조치에 대해서도 조속한 원상회복이 되도록 긴밀히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경색됐던 한일관계가 서서히 풀어지는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일 감정을 넘어선 대가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된 셈이다.


더구나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한일 간 안보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정상은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날로 고도화하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간 긴밀한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한일정상회담을 “신을사조약에 버금가는 대일 굴욕외교”로 규정하며 연일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조사 추진을 본격 검토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 처리하지 못해 지금까지 떠넘기기만 했던 사안을,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들처럼 자신도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하여,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기꺼이 총대를 멨다. 윤 대통령의 한일 외교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다시 하더라도 이점만큼은 칭찬해줘야 한다. 이재명 방탄을 위한 민주당의 공세가 역겨운 이유다. 어쩌면 필자 역시 반일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독자들의 공세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기꺼이 감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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