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가 여론을 왜곡하기도 한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5-29 14:32:22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주필 고하승



요즘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개중에는 아무 의미 없는 여론조사 결과들도 수두룩하다. 가히 여론조사 공해라 할 만하다.


<미디어토마토>가 28일 공개한 34차 정기 여론조사 결과도 그중에 하나다.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로 유승민 전 의원이 26.8%, 한동훈 전 위원장이 26.0%의 지지를 받아 접전양상을 보였다. 이어 나경원 당선인 7.5%, 안철수 의원 7.4%,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4.8%, 윤상현 의원 1.8%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18.7%다.


얼핏 보면 유승민과 한동훈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건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


국민의힘 현행 전당대회 규정은 '당원투표 100%'다. 일반 국민이 여당 대표를 뽑는 게 아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여당 대표로 누구를 지지하느냐’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정확한 여론을 알고 싶다면 규정에 맞게 당원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게 맞다.


설사 당내 일각에서 제기하는 '당원투표 70% 일반 여론조사 30%'로 전대룰을 개정하더라도 역선택 방지 조항, 즉 다른 정당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에서 제외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하자면 거기에서 야당 지지자들은 제외해야 한다. 국민의층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조사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실제로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한동훈 전 위원장이 61.5%로 과반을 차지했다. 압도적이다.


이어 나경원 10.1%, 원희룡 8.7%, 안철수 6.4% 순이고, 유승민 지지율은 그들보다도 낮은 4.0%에 불과했다. 이쯤 되면 유승민은 여당 당권 주자로서는 아예 존재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유승민 지지율은 한동훈과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을까?


역선택 효과다. 역선택이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위해 상대 정당의 취약한 사람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당 내부 분열자로 지목된 그를 야당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개혁신당 지지층 다수가 유승민 전 의원을 밀어준다는 게 역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건 사실이다.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유승민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다.


지지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38.4%가 유승민을 지지했다. 반면 한동훈에 대한 지지는 8.3%에 그쳤다. 또 민주당과 노선이 비슷한 조국혁신당 지지자는 무려 50.5%가 유승민을 지지했다. 반면 한동훈 지지는 10.2%에 불과했다. 특히 개혁신당 지지자 중에서는 54.3%가 유승민을 지지했고, 6.2%만이 한동훈을 지지했다.


여당 지지자들에겐 존재감조차 찾기 어려운 유승민이 야당 지지자들에겐 한동훈보다도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9배가량 많은 지지를 받는 셈이다. 물론 그들은 전당대회에서 투표권도 없고, 여론조사 대상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유승민에 대한 지지는 전당대회에서 아무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자들의 지지로 의미가 없다.(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이고, 응답률은 5.8%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참조하면 된다.)


문제는 이런 무의미한 여론조사 결과가 ‘일반 국민의 지지’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사자들 역시 그런 식으로 여론을 호도한다.


유승민도 종종 “민심에선 내가 앞선다”라는 취지의 말을 해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건 사실이 아니다. “야당 지지층에선 내가 앞선다”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건 여론을 호도하려는 악의 때문일 것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런 식의 무의미한 여론조사는 여론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여론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대로 두어도 되는지 의문이다.


여론조사가 국민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여론조사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