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6-03 17:58:33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모스크·메드레사로 덮힌 도시 부하라의 KO펀치에서 벗어날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아예 기절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백 번 잘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깊은 잠에서 나를 깨워준 것은 이른 아침부터 들려오는 그 흐느적 거리는 노랫 자락이 창문틈새 사이로 침투해 계속해서 잠을 자다간 티무르 아저씨한테 얻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종합운동장과 레닌거리 그리고 10월 혁명 40주년 거리의 넓고 시원한 나무들에 둘러쌓인 푸른거리의 신시가지와는 달리 구시가지는 완전히 시간을 멈추고 오가는 사람들만 과거로 돌아가야만 했다.

말그대로 온통 모스크와 메드레사가 전부였다.

이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 조차 무의미 하였다.

부하라의 구시가지 전부가 1000년이 역사에 걸쳐 있는 햇빛으로 말려 벽돌로 쌓아올린 갈색의 건물들은 온통 아스팔트위에 하늘을 덮고 있었다.

서울의 평범하고 밋밋한 빌딩들을 보다가 갈색의 나즈막한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하기만 했다.

여기서는 그 누구하나 쳐다보는 경찰관이 없었다.

사마라칸트에서는 약간 째려보는 시선은 있었지만 여기서는 더욱 신경을 쓰는 경찰이 없었다.

타슈겐트에서는 심심하다 싶으면 경찰관의 검문에 걸려 여권을 보여주기가 일쑤었는데 점점 서쪽으로 가면서 검문검색이 가벼워 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부하라에서는 카페나 레스토랑 그리고 대형 슈퍼마켓을 비롯해 그어떤 상점에서도 야간에 경비를 보고있는 사설 용역회사의 경비원들을 볼수가 없었다.

동부의 사람들보다 훨씬 친절하고 대화하기 좋아하며 남의 것을 탐하기 싫어하는 성격 탓인지 아니면 곳곳에 즐비한 경찰관들이 눈을 부릅뜨고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는 까닭에 그 누구하나 남의 물건을 탐하는 생각을 갖지 못하는 건지 하여튼 경비원이 없다.

카자흐스탄의 웬만한 대형 백화점이나 중요한 물건을 파는곳에는 영락없이 실탄을 장전한 요원들이 경비를 섰으며 키르키스탄에서도 어깨에 힘주고 손님들의 왕으로 군림하는 모습과는 부하라는 그 반대였다.

하루에 다섯번 예배를 보는 이슬람 신도들이 점점 가까워 지면서 목욕탕을 비롯 이발관/ 미장원으로 각각 건물을 따로쓰고 있을정도였으며 그 흔한 미장원은 부하라에서는 좀 처럼 타?아보기 힘들고 몇발자국 움직일 때 마다 만나는 이발관에서는 수염을 자르는 사람들로 항시 만원이었다.

허벅지가 마비될정도로 하루 웬 종일 걸어다녔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