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7-02 19: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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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잔시의 표정없는 레닌상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도인 두산베를 제외한 다른 도시로 여행하려면 여행자의 비자에 모든 도시가 표시되어 있어야만 했고 여행 서류도 까다롭게 준비해야 했는데 지금은 다섯 번의 검문검색과 단 한번의 여권 검사가 단 몇초만에 부드럽게 끝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그 이후 독립한 타직크스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마마리 라크마노프와 이슬람 반란군과 내전이 한창이었을 때 호잔 지역은 험난한 판 마운틴의 보호 덕택에 내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수도인 두산베보다 훨씬 여유롭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북부지방의 중심지로 타직크스탄의 가장 오래된 도시중의 하나로 대부분 공업생필품을 생산하는 도시답게 시내의 중심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갑을-타직이란 회사의 간판이었다.

험난한 이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간판이 아니고 우리나라 간판이 시내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으니 이럴 땐 약간 우쭐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낡을대로 낡아버린 레니나바드 고스띠니쪄에 배낭을 풀었다. 시라다야강이 바라다 보이는 방으로 달라고 하자 침대가 2개인 방에 나 혼자 잠을 잘 수 있게 해주겠다며 카운터의 아줌마는 침대하나에 10써머니이니 20써머니를 달라고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아줌마는 이렇게 뒷돈 생기는 이유가 없으면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느라 의자에서 꾸뻑꾸뻑 졸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동감 넘치는 거짓말을 넘기고 가면 또다른 생동감이 기다리고 있어 언제나 즐겁다.

5층의 호텔에서 바라보는 호잔의 구시가지는 시라다야강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갈라놓으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본 수없이 많은 레닌 동상중 이처럼 거대한 레닌동상은 없었으며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잔까지 오면서 초등학교나 마을입구에 아기자기하게 생긴 예쁜 얼굴을 한 레닌동상도 여럿 보았는데 호잔시에 도착하자 표정 없는 레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아크타우 호텔에서 열쇠가 고장나 방문을 부숴버렸던 일이나 어제의 두산베 호텔에서 녹슨 수도관이 터져버려 모든 방에 묶었던 사람들이 하루 웬종일 녹슨 찌꺼기 물로 샤워를 해야했던 일이 여기 호잔에서는 어느것 하나가 아닌 두가지 모두가 나의 성질을 긁어 놓았다.

이런대도 일하는 아줌마는 나더러 신사답게 말을 해야 옳지 딱딱하게 얘기하면 어떻게 하냐면서 싸늘한 말을 던졌다. 이런 경험도 여행이 아니면 건질 수 없는 시간들이니 억지로라도 웃어 넘겨야만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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