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7-22 19: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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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쉬인구 절반은 ‘우즈벡인’ 신랑집에서는 보드카를 잔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을 담는 대접에다 보드카를 가뜩 담아 마시는데 여기선 양보라는 것이 통하지 않았다.

어쩌면 술잔 돌려가며 마시는 고약한 버릇이 한국과 이토록 똑같은지 참으로 기특하기만 했다.

엄청 쌓아놓은 음식들 때문인지 그 지독한 보드카를 막걸리 마셔대듯이 마셨는데 취하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정말 그동안 얻어먹은 보드카만 모아놔도 항아리 3∼4개는 필요할 듯 싶었다. 이젠 웬만큼 보드카를 마셔서는 취하지도 않는다. 보드카의 고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새로이 맞은 신부에게 다가가 볼에다 뽀뽀를 해주고 신나게 춤을 추는 신랑의 엄마부터 시작해 신랑신부 이름도 모르는 나를 집에 데리고 와서 조금의 어색함 없이 나를 대하는 마을사람들은 그 누구하나 나에게 웃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키르키스탄에서 웬 우즈벡 사람들의 결혼식이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다민족 국가였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쉬는 원래 우즈벡키스탄 땅이었는데 구 소련시절 모스크바의 획일적인 땅 정리로 볼펜한번의 사인으로 키르키스탄의 땅 이였던 샤키마르돈과 맞바꾸게 되었고 지금도 오쉬인구의 50%정도가 우즈벡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실컷 먹고 마시고 춤을 추고 어느 정도 파티가 끝날 무렵 신랑친구들이 고물덩어리 아우디 승용차에 나를 태우고 데려간 곳은 외롭게 혼자 여행하니 얼마나 쓸쓸하겠냐며 섹시한 우즈벡 아가씨와 하룻밤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면서 길거리 여성들 중에 맘에 드는 아가씨를 고르라는 것이었다.

길거리 여성들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경찰들이 감시를 하고있었지만 그 경찰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길거리 여성들과 어디서 짜릿한 시간을 보낼것인가에만 신경을 곤두서고 있었다. 이슬람의 금욕주의는 여기서는 강 건너 구경 판에 불과했다.

외국인이 다가서면 10달러이지만 우리가 가면 3∼5달러 밖에 요구하지 않으니 전혀 신경 쓰지 말라며 오쉬 시내를 쥐잡듯이 뒤진 끝에 환상적인 미모의 아가씨 발견했다.

그러나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간 곳은 어이없게도 오쉬의 하나밖에 없는 야외 수영장이었다.

호텔도 신랑친구의 집도 아닌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한적한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복도 없이 서로 홀딱 벗고 무슨 수영을 하고 무슨 섹스를 하라는 건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몇 일전 우즈벡키스탄 페르가나에서 만났던 나보이 축구 클럽의 축구 코치도 내가 안디잔으로 출발하는 오후 친선게임이 끝나고 나면 자기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줄 테니 우즈벡키스탄의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험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곤란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는데 여기서도 지금 똑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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