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층과 아래층 女 미묘한 심리전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8-27 19: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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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풀 ‘유럽 영화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프랑수아 오종(36)은 이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2002년 베를린영화제 ‘탁월한 업적상’ 수상작인 ‘8명의 여인들’이 올해 초 개봉됐는가 하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지난해 ‘프랑수아 오종 영화제’가 열리고 지난 5월 대표적인 장·단편을 모은 DVD 세트가 출시되기도 했다.

최근 극장에 간판을 내건 ‘스위밍 풀’은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돼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영화에다가 칸 초청작이라고 하면 지루한 예술영화일 거라고 지레짐작할 사람이 많겠지만 오종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신랄한 풍자, 그리고 짜릿한 성적 코드가 듬뿍 녹아 있어 대중적 매력도 만만치 않다.

독신 중년여성 사라 모튼(샬롯 램플링)은 영국의 성공한 범죄추리소설 작가. 소재 고갈과 의욕 상실에 빠져 있던 그는 출판사 편집장 존(찰스 댄스)의 권유로 프랑스 남부의 별장을 찾는다. 음습하고 시끄러운 런던과 달리 이곳은 따사로운 햇볕, 싱그런 공기, 수영장이 보이는 전망, 한적한 분위기로 술술 글이 풀려나가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날, 존의 딸이라는 젊고 요염한 줄리(뤼디빈 사니에르)가 나타나자 모든 것이 뒤엉키고 만다. 식탁을 엉망으로 만들고, 텔레비전을 큰 소리로 틀어놓고, 밤마다 다른 남자를 데려와 흐드러진 정사를 벌인다.

사라는 분노를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과 너무 다른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다. 줄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라는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기로 마음먹고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판이한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것은 사라만이 아니다. 줄리도 사라의 행동을 흥미롭게 관찰하다가 그가 쓴 글을 훔쳐보고는 그날 밤 사라가 호감을 품은 노천 카페 종업원 프랭크(장 마리 라모르)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둘이 알몸으로 수영장을 누비는 모습을 질투심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본 사라, 이튿날 마당의 핏자국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챈다.

위층의 중년 여자와 아래층의 젊은 여자는 여러모로 대조를 이룬다. 이들의 상반된 캐릭터는 다양한 상징과 기호에 의해 대비되지만 가끔은 뒤바뀌어 재미를 준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나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시점이 역전되는 것이다. 프랭크를 불러들인 줄리가 거실에서 사라에게 함께 춤추자고 권했을 때, 마지못해 어색한 몸짓으로 리듬을 따라가던 사라에게 프랭크가 오히려 흥미를 보이는 대목은 관계 역전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종은 한정된 공간과 몇 안되는 등장인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재주를 갖췄다. 관객의 예상을 깨는 상황이 이어지면서도 머리를 끄덕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배우 경력 40년을 자랑하는 샬롯 램플링의 농익은 연기와 ‘8명의 여인들’에서 막내 카트린으로 등장했던 뤼디빈 사니에르의 풋풋한 매력도 볼 만하다.

그러나 초반 30분까지의 전개는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의 눈에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마지막의 반전도 그동안 뒤엉킨 실타래를 한꺼번에 풀어주기에는 미흡해 허탈하고 찜찜한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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