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9-15 19: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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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9) 불을 뿜는 海女示威

“제가 또 말씀드릴게요. 이번 사건은 말입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서 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악명 높은 치한이자 지옥의 사자 같은 살인범을 붙잡아 처단할 때까지 눈물겨운 추격전은 벌어질 것 아니겠어요? 인내와 끈기가 요구된다고 봅니다.

여자의 앙심은 오뉴월 서릿발이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자특공대가 진격을 해야 한다는 얘기라구요,

그렇다해서 남자분들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남자분들은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피해자 두 사람은 한남마을에 있는 영재의숙 출신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남마을(물론 도선마을도 같음)엔 피해자들의 동창과 동문들이 쫙 깔려있기 때문이죠.

대부분 직업이 해녀들이고, 또한 그들 속에 최상균 형제라면 이를 가는 피해자들이 섞여있기 때문에, 멍하니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똘똘 뭉쳐서 진격을 한다면 악당들을 때려잡는 것쯤 식은 죽 먹기와 다를 바 없다고 보거든요.

남성 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에 힘입어서, 여성들은 무서운 힘을 발휘할 것으로 믿습니다.”

앞서 회의벽두, 이만성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전쟁과 승리’에 대해 제 1탄을 터트렸던 여학생 강은선(姜恩善-21)의 입에서 튕겨져나온, 충격적인 제 2탄이었다. 강은선은 중등부의 반장인데다 죽은 강은자의 4촌 언니라는 점에서, 그녀의 피를 토하는 것 같은 발언은 청중들을 영과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가부를 묻기도 전에 청중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우레와 같은 박수로써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참 좋아요. 아주 멋진 발상이라고 봐요. 이 기회에 이 고장 여성들의 강철같은 단결과 태풍보다 거센 치맛바람의 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발해 주세요.

여성여러분! 그렇다해서 남성들은 팔짱끼고 서서 강 건너 마을 불 구경하듯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발벗고 나서니 보조 역할하는 데 추호도 소홀함이 없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뒷바퀴를 힘껏 밀어줘야 앞바퀴가 맘놓고 달릴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니까요. 어쨌든 지금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박빙(薄氷)의 아슬아슬한국면을 맞고 있는 겁니다.

철통같은 방어력과 원자폭탄 저리가라 할 파괴력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라구요. 우리의 표적은 누가 뭐라고 해도 최상균 형제와 최정옥 아닙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는 이참에 그치들을 움도 싹도 없이 깔아뭉개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이만성의 장황한 보충설명은 숨죽인 청중들로 하여금 지축을 뒤흔들 정도의 큰 박수가 터져나오게 했다. 그날 밤은 우선 미진한 대로 1)최씨집으로 쳐들어가서 위협적인 구호를 외치며 준엄하게 성토할 것 2)이번 사태를 해결함에 있어서 여성들이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는 2개항만을 결의하고 회의를 끝냈다.

이튿날 아침에 속개된 회의, 그것은 제2차 긴급비상대책회의였다. 물론 장소는 ‘진명의숙’이었고. 주체는 여성들이었어도 남성들도 동참한 남녀공동의 초만원 연석회의였다.

그런데 여성들은 해녀들이 주축이 되어 있었지만 하남마을, 달미동, 천외동, 도선마을, 그밖의 주변마을에서 온 영재의숙 출신 해녀들 일색이었다.

급보를 듣고 달려온 고정과, 조용석, 서병천, 이현석, 김순익, 그리고 ‘영재의숙’의 강-윤 두강사와 ‘진명의숙’의 강-민 두 강사들은 이만석과 나란히 간부석에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곧 막이 열린 연석회의에서는 1)건준, 미군정청, 신문사, 검찰, 경찰에 진정서 낼 것 2)유력한 용의자 최상균 형제 체포토록 요구할 것 3)진정서는 피해자 가족과 ‘진명의숙’, ‘영재의숙’, ‘도선의숙’의 학생과 해녀들의 공동명의로 작성할 것 등에 대해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리고 진정서 말미에는 망국이 진정인들의 요구사항을 묵살할 경우, 일어나는 불상사에 대해 진정인들에게는 책임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대목을 못 박아 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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