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준 내부에 파벌이라니 너무나도 뜻밖이군요.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도 힘이 모자랄 판인데, 누구 좋은 일 시 키려구...? 적전반란(敵前叛亂)이라는 말 있잖아요? 외국인들 앞에서 창피한 줄 모르고 빨가벗은 몸으로 춤을 춘다구?
지나가던 강아지들이 비웃을 것 같네요. 다른 지방이라면 몰라도 손바닥만한 땅위에서 30만 ‘괸당’끼리 아귀다툼 한다는 건 용납될 수 없지요. 에 또, 그건 그렇고, 오형과 윤기자가 우리를 만나러 온 사실을 양 부위원장외에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나요?”
고정관은 몸을 떨며 분통을 터뜨리고 나서,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기자가 먼저 입을 열려고 하자, 오진구가 살짝 손짓으로 제지시키며 다급하게 입술을 들 먹었다.
“양부위원장님 외엔 아무도 모르고 있어요. 우리 두 사람에게 밀사의 임무를 띠우고 쥐도 새도 모르게 파견해 주셨으니까요”
“맞습니다. 비밀리에 저희 두 사람만을 ...”덩달아 윤기자는 뒷 북을 쳤다. “그럼, 김덕규 부장도 모르고 있다는 얘긴가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조용석이 따지는 듯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지난번 ‘건준’ 비서실에서 첫 대면을 했던 김덕규의 그 껄끄러운 모습이 떠오른 탓인지, 조용석의 차가운 목소리 속엔 가시가 돋혔음을 느끼게 했다. 고정관도 이만성도 공감이 갔음인지, 눈빛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고 있지요. 그 친구가 알아버렸다면 저희들이 어떻게 밀사자격으로 떠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건준 내부의 사정은 걷잡기 힘든, 난마와 같은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글자그대로 백척간두에 서있는, 매우 긴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구요. 하지만, 그것은 빙산일각이고 수면 밑에 감춰져 있는 엄청난 크기의 밑 둥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희들이 야음을 틈타서 달려왔겠습니까?”
가슴이 몹시 뛰고 있는가? 오진구의 목소리는 공포에 떨고 있음인 듯 격하게 떨려나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얼굴 위에 그림이나 글씨로 나타낸 듯. 극명하게 돋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패배와 절망을 곁들인 어둡고 차가운 난기류였다. 방안의 분위기가 소름이 끼칠 만큼 살벌해졌다. 군침 넘어가는 소리만 청승맞게 들릴 뿐이었는데,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가볍게 헛기침 한번하고 입을 연 사나이, 그는 이만성 이였다.
“여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얼굴이 각각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오부장과 유기자는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누가 무슨 소리를 터뜨린다 해도 외부로 새어나갈 염려는 없다고 믿습니다. 각자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눴으면 싶습니다. 파벌 얘기를 듣고, 저희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그게 누구일까요, 파벌을 조성하고 있는 문제의 인물이...? 김덕규 부장도 한몫을 거들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람에 대해 대충 아시는 점을 말씀해 주시지요!”
김덕규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김순익 만이 얼떨떨한 상태이고, 고정관과 조용석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질문해 주었다고 생각 된 때문인지, 어깨를 들석거려가며 이만성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었다. 때마침 방안의 분위기는 들뜨기 시작했고, 가슴과 가슴속을 앞다투어 달리는 몇척의 똑딱선소리가 지평선 저쪽으로부터 낮은 가락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서울로 출장가신 김대호 선생은... 어쩌면 실종되지 않았을까 하는 불길함과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윤기자는 B일보 소속이면서, 건준 청년부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오늘 서병천 씨는 안 나오셨지만 지난 23일 건준에 다녀오시지 않았습니까, 세분께서...? 이튿날인 24일 김대호 선생은 윤기자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상경 길에 올랐었지요. 그런데 윤기자는 이튿날 돌아온 겁니다. 실종사건은 목포행 연락선 안에서...”
오진구의 떨리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는 어렵게 어렵게 이어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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