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1930년대 초 일본인 도사(島司)를 혼비백산 까무러치게 했던 ‘해녀항쟁’때에는 주동자인 김대호의 뒤를 따랐던 사람이 이돈인 이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요컨대, 그들 두 사람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기로 하늘에 맹세하고 태어난 숙명적인 동지인 것처럼, 두터운 우정을 유지하면서 험란한 세파를 능란하게 헤엄쳐온, 보기 드문 난세의 호걸들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시대를 맞이한 이마당에, 40여년 동안 쌓아올린 공든탑을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뜨리고서 무엇을 얻어보겠다고, 안 하던 짓을 골라 궁상을 떨어왔더란 말인가? 우정에 금이 간 것으로 그치지 않고,너 죽고 나 살자는 극한적인 살인용 무기를 은밀히 작동하고 있었다니... 오진구에게 있어서는 하늘이 무너진 만큼이나 두렵고 허망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였다면 당장 김덕규를 끌어다 구멍에 머리 처박고 이실직고하도록 날벼락을 떨구고 싶었지만, 어느 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흥분하고 홧김에 난동을 부린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진구는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릇된 판단이었음을 뒤늦게 뉘우치게 되었다. 그 때 오진구가 난동을 부렸더라면 전화위복(轉禍爲福), 김대호의 실종사건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오진구는 그 날 와들와들 몸을 떨며 우두커니 서 있다가 고개를 흔들고 이성을 되찾았다. 통통거리는 관자놀이를 가라앉힌 다음,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벽에 갖다 붙임과 동시에 한쪽 귀를 구멍에 밀착시켰다. 부위원장실 안의 말소리가 마치 확성기를 들이댄 것처럼 크게 들렸다. 구동안 부위원장실 안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고갔는지 오진구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김덕규는 중요한 대목들을 수첩에 메모하고, 더 이상 필요한 자료가 나올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서자 용무를 끝내고 밖으로 기어 나왔을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구멍이 뚫린 지는 좀 오래 된 거 같았어요. 많이 사용했다는 근거도 되겠지만, 가장자리에 때가 묻어있었고... 그때 부위원장실에서 상경 건에 대한 얘기도 있었던가요?” 오진구는 ‘구멍’에 대해 신 바람나게 늘어놓고 나서, 피날레 장식과 곁들여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상경 건... 물론 있었지요. 좋은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직은 물적 증거가 없잖아요? 세상에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 일들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아직은 문제의 구멍과 연관짓는, 성급한 판단은 접어둘 필요가 있다고 봐요”
고정관의 답변이었다. 조용석과 이만성도 수긍이 가는 듯 말없이 고개들을 끄덕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슬픔과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제주도 전역에 걸쳐 일제히 벌이기로 계획했던 ‘면장축출운동’은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 오늘은 헤어지기로 합시다. 내일 오후나 모레 아침 양부위원장님을 찾아뵙기로 해야겠소. 잘 말씀드려주시고, 윤기자는 경성 K일보의 왜곡 보도를 규탄하는 뜻에서 르포기사를 크게 실어 주시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성내에서 뵙기로 하지요” 오진구와 윤기자는 제주읍으로 떠났고, 고정관, 조용석 이만성 등 세 사람은 한남마을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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