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인연도 소중히 해야’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0-15 18: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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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사 혜자스님 특별기고 출가 수행자는 본래 인연(因緣)을 소중히 한다. 인연이란 어떤 원인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물로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인연에는 좋은 인연(善緣)과 좋지 않은 인연(惡緣)이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인연이든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 출가 수행자의 본분이요, 모든 사람들 또한 인연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출가 수행자의 신분으로 올해만 북녘 땅을 두 번이나 밟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한번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북한의 주요 사찰 단청불사 지원단 일원으로 지난 칠월 칠석에 북녘의 땅에 첫 발을 내딛었으며, 또 한번은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주)현대아산 김윤규사장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서였다.

두 번의 북한 방문 길은 본인에게는 많은 인연을 생각케 하는 소중한 시간 이었다.

본인은 수도 서울 1천만 시민의 쉼터인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호국참회 관음기도도량 도선사(道詵寺)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도선사에는 고(故) 박정희대통령 육영수여사 내외분과 고(故) 정주영회장의 영정이 지장전에 모셔져 있다. 지난 칠월 칠석날 아침 칠석불공을 준비하다가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을 매스컴으로부터 접하게 되었다. (주)현대아산 정몽헌회장의 타계 소식이었다. 이날이 바로 첫번째 북한 방문의 날이었다.

칠석 행사를 마치고 북한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도선사 대중들에게 “고(故) 정주영회장이 도선사에 모셔져 있으니 정몽헌회장의 영가도 도선사로 올지 모른다.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 스님들과 북한의 주요 사찰을 둘러보면서도 마음은 도선사에 와 있었다.

북에 머무는 동안 정방산 성불사(成佛寺)를 방문하게 되었다. 성불사는 도선사를 창건한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께서 창건한 사찰로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의 ‘성불사의 밤’(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귀에 익은 사찰이다.

또한 생전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을 한 故정주영·정몽헌 부자가 추진하였던 개성공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명찰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성불사 주지스님과 남쪽 일행 스님들은 ‘성불사의 밤’ 노래를 합창하게 되었고 합창 도중 고개를 들어 극락전(極樂展,아미타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전각)을 바라보니 풍경(風磬)은 없고 고색창연한 전각만이 쓸쓸히 서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고 무언지 모를 허전함에 “도선사에서 풍경을 보시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성불사 주지 스님도 흔쾌히 응하여 두 사찰은 도선국사의 인연 때문인지 구두로나마 자매결연을 맺고 조국통일을 위해 기도하기로 하였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故정몽헌 회장의 7·7재를 도선사에서 봉행하게 되었고 본인은 성심성의껏 영가의 극락왕생을 축원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 정방산 성불사엔 풍경이 없다. 그 풍경을 도선사에서 기증한다”는 기사가 각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기사를 접한 어떤 장인이 성불사 풍경은 자신이 성심성의껏 제작하여 보시하겠다고 제안하였지만, 극락전 풍경만큼은 본인이 직접 제작하여 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풍경에는 정(鄭)씨 부자가 생전에 소망했던 ‘조국통일’ ‘극락왕생’을 새겨 성불사 극락전에 달기로 한 것이다.

고(故) 정몽헌회장의 49재를 마치고 7관세음 33일기도를 회향한 며칠 후 미륵보살의 화현으로 우리에게 언제나 친숙한 웃음을 주는 포대화상(包袋和尙)의 석상을 도선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모시고 제막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9월26일(초하루) 100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초하루 새벽예불을 드리는데 갑자기 법당의 아미타부처님 법의(法衣)에서 찬란한 빛이 나기 시작하였다.

본인은 부처님의 상서로운 빛을 체험하면서, 다시 한번 소중한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성불사 극락전 이미타불과 도선사 아미타 부처님의 방광(放光) 인연, 고(故) 정몽헌회장이 추진했던 개성공단사업 지역의 인근사찰 성불사에 풍경(風磬)보시와 도선사에서의 49재 봉행 인연, 북한을 처음 방문하면서 3년만에 꺼내든 카메라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누어주는 포대화상 제막식과의 인연,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북한을 방문하게 된 것은 고(故) 정몽헌회장의 도반(道伴)인 (주)현대아산의 김윤규사장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민간기업이 자본을 투자하고 북측이 노동력을 제공하여 평양에 건설한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참석차였다.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성불사가 있는 정방산 근처를 지나오는데 극락전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싶고 고(故) 정몽헌영가가 더욱 생각났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호국참회 관음 기도도량 도선사 아미타 부처님이 보이신 상서로운 빛은 7관세음 33일 기도에 동참한 도선사 신도들의 간절한 서원에 부처님께서 감응한 것이요, 평생 조국통일을 발원했던 고(故) 정주영·정몽헌부자의 서원이 빛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또한 경제적 어려움과 태풍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는 희망과 용기의 빛이요, 도선사 주지인 본인으로서는 대작불사를 원만히 성취하겠다는 발원에 대한 부처님의 응답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한번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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