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구와 윤기자가 ‘도선마을’을 다녀간 이튿날 오후, 지방신문 B일보에는 경셩 K일보가 왜곡보도한 문제의 ‘진정서관련기사’를 홀랑 뒤집은, 주목할만한 내용의 기사가 실려 나왔다. 1면 톱으로 다루어진 기사에서, 대문짝 같은 특호활자의 제목부터가 강하게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평화의 땅에 흙탕물 퍼부은 후레아들’ 이것은 ‘배너헤드라인’ 즉, 가로쓰기 전단(全段)제목이었고, ‘희대의 兄弟癡漢 출몰’은 아름드리 세로 제목이었다. 그리고 ‘주범은 日帝앞잡이였던 전직 관료’는 가로 부제(副題)였고, ‘분노한 지역주민들 관계요로에 진정서 제출’ 은 세로 부제(副題)였다. 게다가 작은활자의 작은 제목이면서도 따끔하게 경각심을 돋우는 ‘30만 괸당 小地主 평등생활의 天國’을 강조함으로써 제주땅은 공산주의 불가침의 성역임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관광면’이라고 해서 제주도와 별개의 이방지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끔찍한 범죄 사건의 주범도 이 고장 사람이고, 피해자 또한 이 고장 사람이라는 데서 주민들은 치욕을 느끼며 분노하고 있다. 작은 제목으로 ‘한남마을 2백여 海女들 들고일어나 침묵 示威’를 강행한 것도 그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사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8·15 해방 후 혼미한 과도기를 틈타 쥐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어도 용서받기 어려운 일제 앞잡이 이자 전직 고위 관료였던 자들이 야음을 악용해 여자사냥을 일삼고 있어, 30만 도민들로 하여금 불안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일제앞잡이 중 제 1인자로 꼽혀온 한남마을 출신인 최모 형제가 ‘진명의숙’여학생들을 덮쳐 몸과 목숨을 빼앗고, 행방을 감춘 것은 지난 22일 밤의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강모양은 뒷산에서 나무에 목 매달아 죽었고, 양모양은 자해로 신음 중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사건 직후 한남-도선동 주변마을 젊은 해녀 (영재의숙, 진명의숙, 도선의숙의 동창과 동문)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최씨집으로 몰려가서, 달아난 주범과 공범 형제를 대상으로 규탄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해녀들은 불법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질서를 지킨 침묵시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번의 노부모는 충격과 비탄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던지, 시위대가 해산한 후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이보다 앞서 중견 청년들과 간부급해녀들은 연석회의를 열고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한 끝에 미군정청과 ‘건준’ 등 관계요로에 진정서를 내기로 뜻을 모았다.
세계적인 웅변가로 명성을 떨쳐 온 고정관-조용석, 경제학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서병천, 학계와 언론계에 뜻을 둔 이만성 그리고 정치적 야망을 불태우고 있는 해녀대표 강은선과 특공대기질을 타고난 김순익 등이 선두를 이룬 기라성 같은 2백여명 해녀들의 연서(連署)로, 진정서는 완성되어 있었다.
이 전정서에서 진정인들은 1.주범 최모형제와 공범 최정옥을 체포 엄단할 것 2.특히 미군정당국은 긍지와 자신감을 갖고 사태의 심각성을 올바로 판단하고 공평하게 다루어 주기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 제주도와 제주도민에 대해 진지하게 기본지식을 터득해 주기 바란다고 덧 붙였다. 계속해서 진정서는 몇 천 년 전부터 법치주의 이전, 이미 천부의 민주공화국 형태인 탐라국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힘주어 상기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공산주의 나라도 감히 넘볼 수 없으리만큼 대지주는 없고, 모두가 비슷비슷한 사유지를 갖고 있는 소 지주들의 천국이어서 빈부의 격차가 없을뿐더러 남녀평등으로 삶의 바탕자체가 평준화를 이룩함으로써 자유와 빵을 고루 갖춘, 독특한 선진(先進)지역임을 내세우고 있다. 미군정당국이 소신을 갖고 범인을 체포하고 법에의해 엄중 처단해 주기를 바라지만, 만약 진정인들의 기대에 어긋났을 때엔 제2, 제3의 끔찍한 사건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었다.
미군정당국은 30만 ‘괸당’들에게 신뢰를 심어 줄 수 있는 과감한 조치 있기를 엄숙히 촉구한다는 대목은, 더욱 눈길을 끌게 하는 바 있었다.-
B일보의 기사는 위와 같은 줄거리로 엮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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