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0-23 17: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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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장진지로 가는 길 도선마을 어귀에서 맞닥뜨린 고정관과 조용석은 그들 나름대로, 이만성과 서병천은 역시 그들 나름대로 놀라는 기색들을 감추지 못했다. 이만성과 서병천은 낯선 두 청년이 맘에 걸렸지만, 고정관과 조용석의 입장에서는 종적을 감췄던 서병천이 불쑥 나타난 사실이, 반가움에 앞서 괴의쩍게 느껴진 때문이었다.

“아니, 서형!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돌아와 주셨군요. 물론 혼자서 야금야금 재미 보러 다니신 건 아니겠지요? 말없이 훌쩍 떠났다가도 부랴부랴 되돌아와 주셔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어디가서 뭘 하신 겁니까?”

조용석이 뚫어지게 얼굴을 쳐다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농담반 진담반 가시 돋친 목소리로 따지듯 재어 물었다.

“어이 조군! 말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인데, 흉허물 없는 사이라고 몰아 붙이지 말게!자네가 나서서 말하지 말라고 해도 입 다물고 있을 리 없는 서형의 성격 몰라서 그래?”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얄밉다더니 고정관은 서병천을 감싸는 척하면서, 어서 빨리 털어놓으라고 재촉아닌 재촉을 했다.

“형님들 앞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이실직고 할 터이오니 제발 살려만 주시옵소서!” 서병천도 농담반 진담반 듣기 좋고 보기 좋게 능구렁이처럼 받아넘기고 나서, “얘기가 좀 복잡하고 장황할 것 같은데...”하고, 전제를 한 다음 문제의 두 청년에게 신경이 쓰인다는 뉘앙스를 살짝 풍겼다. 고정관과 조요석의 앞가림이 무디고 덤덤함을 일깨우는 경종의 성격을 띤 뉘앙스인 셈이었다.

“참, 소개를 해야겠소. 이두 친구로 말하면 멀리 ‘신좌면’ 함주 마을에서 온 열렬한 동지들이오. 우리와 손잡고 함께 일해볼 뜻이 있어서 찾아왔다지 뭐요. 조용한 장소에 가서 소개할 작정이었소만...”

고정관과 두 청년을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이분은 경기도 개성이 고향이고 제주도가 제2의 고향으로 되어버린 학병출신 서병천 동지이며, 또 이분은 앞길이 크게 촉망되는 이 고장 제2의 중견 청년 이만성 동지요. 인사 나누고 동지애를 다지도록 하시오!” 하고 이만성과 서병천에게 아쉬운 대로 궁금증을 풀어주며 굳게 결속할 것을 당부했다.

양윤근(23)-부종윤(22) 두 청년은 매우 반갑고 감격해하는 얼굴로 깍듯이 머리 숙여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서병천은 악수가 끝나기 바쁘게 호주머니 속에서 수첩을 꺼냈다.

“두분께서 함주에서 오셨다니까 얘긴데, 장지태(23) 군을 아시는지요?” 하고, 두 청년을 향해 묻는 것이었다.

“네, 알고 말고요. 우리 두 사람은 징병으로 해외에 출정 갔었지만, 장지태 그 사람은 제주도에서 일본군에 복무했었지요. 보통학교 동창이구요” 양윤근이 대꾸하고 부종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요? 잘 알겠어요” 서병천도 고개를 끄덕인 다음,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 좀 나눴으면 싶은데요. 제주읍으로 가는 길을 늦춰서라도 말요”하고 고정관에게 당부를 했다. “그럼, 우리 김순익군의 집으로 쳐들어가면 어때? 어쩌면 그 친구가 이쪽으로 우리를 배웅하러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구. 자, 우리 그쪽으로 갑시다!”

그 때였다. 고정관이 앞장서서 김순익의 집으로 가기 위해 도선마을 어귀로 들어선 순간 저 만치서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는 낯익은 사나이를 발견했다. 김순익이었다. 잠시 후 6명의 사나이들은 김순익의 집으로 안내되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서병천이었다.

“그 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머리를 꺼낸 다음, “저는 일본군에 복무하는 동안, 제주출신 현역병 3백여명을 추려 명단을 작성해 두었었지요. 이번 3일 동안 일제 점검을 해보았는데, 매우 고무적이었어요” 서병천의 말은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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