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천은 떨리는 목소리로 씹어뱉고 나서, 손아귀에 움켜쥐었던 때묻고 구겨진 신문지를 방바닥에 펼쳐 놓았다. 어제날짜의 석간 B일보였다.
“아직 저의 용무가 끝난건 아니지만, 반갑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해서 불에 덴 기분으로 단숨에 달려온 셈이지요”
이렇게 내뱉은 다음, 부리나케 호주머니 속의 수첩을 끄집어내 무릎 위에 펼쳐놓은 것이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박자 맞추어 군침을 삼키면서 굳어진 얼굴 날카로운 눈초리로, 심상찮은 서병천의 몸 동작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사의 골자를 간추린 깨알같은 글씨들로 채워진 수첩갈피를 그는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고정관위원장님을 필두로 이 방안의 여러분께서 이미 신문기사를 읽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읽고나서 짜릿하게 느껴지는 독후감 역시 약간씩의 차이는 있을망정, 거의 공통점을 발견했으리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신문기사를 연거푸 3번 읽고 보니 반갑고 기쁨은 잠시이고, 등뒤로 철퇴를 휘두르며 살금살금 쳐들어오는, 소름 끼치는 발자국 소리들을 듣는 기분이어서 공포와 전율같은 것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간단하게 몇 가지 대목만을 지적해 볼께요”
①30만 괸당 소지주 평등생활의 천국 이라는 작은 제목아래, 제주땅은 ‘공산주의 불가침의 성역’으로서 30만 도민들은 저마다 국유지 아닌 사유지를 갖고 있는 소지주들이고, 그래서 빈부의 차가 없으며 남녀평등이 일상생활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독특한 선진지역이 제주도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 들 수 있습니다.
②10만 일본군이 주둔했을 때에도 볼 수 없었던 끔찍한 사건들이 해방된 이 땅 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미군정당국은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범인체포에 힘써줄 것을 촉구하고 있는 점, 또한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통틀어 기사내용을 훑어보았을 때, 30만 도민은 우선 통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임에 틀림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진명의숙’ 여학생들을 집단으로 강간 치사케 한 사건의 주범과 공범 그리고 미 군정당국에게 적개심을 돋우는 기사였다는 측면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요. 따라서 이 기사는 본의 아니게 미군정당국과 일제 앞잡이들 사이에, 결속을 다지도록 촉매작용을 한 꼴이 되어버렸다는 것 또한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컨대 제주도 안팎의 분위기가 예측을 허용할 수 없는 방향으로, 험악하고 살벌하게 얼어 붙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에 초점을 맞출라치면,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임에 틀림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지금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서두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장 저나 고정관 위원장님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본군에서 무장해제를 하고 돌아온 몸이지만, 해방된 조국 땅에서 재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고 있다는 얘기와도 맥을 같이한다는 뜻이 되겠지요. 게다가 다른 것들은 제쳐놓고라도, 김대호 선생 실종사건을 어떻게 대처해야 될 것 같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에 모이긴 했지만, 아직 조그마한 돌파구도 찾지 못한 것이 따분한 우리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서병천은 입술을 축여가며 심각한 얼굴로 글을 읽듯 늘어놓던 장광설을, 오랜만에 마무리를 지었다.
“서병천 동지는 그렇게 안 보았었는데,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군요. 오래전에 현역병 3백여명의 명단을 갖고 있었다니 대단하네요!”
조용석의 말에 모두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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