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였다.
“우두머리 친일파-민족반역자를 때려잡았다면...?”
김순익 쪽을 힐끗 돌아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입맛당기는 질문을 던진 사람은 조용석이었다.
“큰고기 대어를 낚은 셈인데, 켕길게 뭐가 있다구? 감질나게 굴지말고 속 시원히 털어놔 봐요. 골로 간 녀석은 누구야? 그래서 그자는 죽었다는 얘긴가? 어서 그 대목부터...”
고정관도 여느 사람 못지 않게 매우 궁금한 듯 빙그레 웃는 얼굴로, 그러나 고압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굵은 목소리를 내뿜으며 매몰스럽게 다그쳤다.
“예, 말씀드릴게요. 막상 말은 꺼냈지만, 속이 울렁거리고 목이 메일 것만 같아서 더듬거리게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양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딱 부러지게 해치우고 말았습니다.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얘기지요. 기왕 손을 대었다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뜨뜻미지근하게 다룰 바에야 애당초 손을 안 대니 만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저는 전쟁이 끝나고 민족이 해방된 순간부터, 제 1차 적으로 해치워야 할 일거리가 눈앞에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몰아낼 놈은 몰아내고 죽여야 할 놈은 죽이자!
이것이 하늘에 대고 외친 저의 피맺힌 맹세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친일파-민족반역자 등살에 아버지를 잃었다구요.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자는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면장자리에 도사리고 앉았던 김모(48)라는 자입니다. 그자는 아버지와 보통학교는 물론 고등보통학교까지 줄곧 붙어 다닌 학교동창이지요.
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한마을에서 살아온 이웃 사촌임과 동시에 ‘죽마고우’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문제는 학교성적은 물론 인품과 인격에 있어서, 아버지가 늘 한 수위였다지 뭡니까? 하긴 그게 화근이 된 셈이었지요만, 그자는 열등감에 사로 잡혔었구, 왜놈에게 달라붙어 얻은 면장감투를 빼앗기지나 않을까 하고, 불안에 떨다가 아버지를 징용으로 보낸 겁니다.
아버지는 북해도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하시다 탄 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으셨어요. 물론 징용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원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일제 앞잡이 악질 면장의 손에 비참하게 희생되신, 가엾고 불쌍한 원혼이라구요. 자식된 도리로서 한을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손을 쓸 수밖에 달리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양윤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줄기를 손등으로 문지르면서, 비분강개한 목소리로 울먹거렸다.
방안의 분위기가 살짝 건드려도 터질 것처럼 숙연하다 못해 으스스하다.
벌레하나 못 죽일 저 샌님 같은 얼굴-면민위에 군림해온 서슬 푸른 일제 앞잡이를 죽이다니, 효심이라는 이름의 그 힘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손을 썼는지 구체적으로 그 대목을 얘기해주시지 않으렵니까?”
역시 눈물을 글썽거리며 바싹 다가들어 하소연하듯 재촉한 사람, 그는 김순익이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김순익은 자신의 처지와 가슴아픈 사연을, 등사판으로 등사해 내듯 고스란히 양윤근이 나눠 가질 것 같아서, 두 사람은 별개의 인간 아닌 이명동인(異名同人)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세상은 끝없이 넓으면서도, 두 사람의 설자리를 한사람의 설자리로 만들어 줘야 할 만큼 비좁다니...’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김순익은 눈앞의 현실이 너무도 알쏭달쏭해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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