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수석 위원장을 잃은 ‘건준’은 대들보가 폭삭 무너져버린 살벌한 폐가(廢家), 소름끼치는 ‘유령의 집’ 바로 그것이었다. 파벌싸움의 제물이 되어버린 김대호 선생, 그를 제거한 패거리들은 어둠속에서 개가를 부르며 축배를 들었을테지? 그러나 개가도 좋고 축배도 좋지만, 대들보가 무너져버린 ‘유령의 집’에서 우두머리를 제물로 바쳐 얻게 될 부귀영화, 그것은 무서운 재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930년대초 소위 ‘해녀항쟁’을 비롯해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항일투쟁으로 일관해오는 동안, 일본경찰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었고 감옥을 작은 집 드나들 듯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독한 일제치하에서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제가 물러가고 민족이 해방된 마당에 같은 민족 같은 동포들의 손에 의해 목숨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민족적 치욕임과 동시에 민족적 비극임에 틀림이 없다.
아, 이민족의 앞날이 걱정스럽구나! B일보 윤동성 기자는 김대호 선생의 실종사건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비밀에 붙일 수도 없었다. ‘건준’의 책임자인 이도인 위원장에게 연락선 안에서 있었던 일을 본대로 겪은 대로 보고를 했다.
때마침 위원장실에는 김덕규 부장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김덕규부장은 이도인 위원장의 한쪽 팔다리와 같은 존재여서, 어디를 가나오나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니는 사람이고 보니 윤기자는 싫든 좋든 함께 만날 수밖에 없었다.
“말로만 들어왔는데, 청천벽력이란 따로 없군! 그분이 비명으로 가시다니...이건 우리 건준 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체의 크나큰 손실이고 엄청난 비극이라구. 첫손을 꼽는 항일투사로 30만 도민의 추앙을 받아온 그가 새 시대를 맞아 빛을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리다니, 이렇게 비참할 수가 있나? 하늘도 무심하군! 백년에 하나 낳을까 말까한 그런 인재였는데 애통하기 짝이 없다니까.
그런데, 윤기자! 얼마동안은 작전상 비밀에 붙이는 게 좋겠어. 기사화의 보류는 물론 혼자만 알고, 일체 입밖에 내지 않도록 해주게! 보안조치가 필요해. 그리고 사람의 일이란 모를 수도 있으니까,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며칠동안 기다려 보기로 하자구!”
윤기자의 보고를 듣고 나서, 이도인 위원장은 침통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한참동안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마치 조사(弔辭)라도 읽듯 애처로운 구절들을 늘어놓곤 했다. 그리고 말미에 실낱같은 희망 운운하는 표현과 곁들여서, 보안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잘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날엔 건준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30만 도민은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혹시 누구의 소행인지 의심가는 대상은 떠오르지 않습니까?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음모가 아니고서는, 언감생심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에요. 말단 조직원도 아니고 건준의 수뇌부를 말살했다는 것은, 건준 자체를 깔아뭉개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볼 때, 당분간은 은폐될 수 있어도 장차 표면화되는 날엔 제주도는 발칵 뒤집힐 게 틀림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조직이 되든 개인이 되는 범인도 붙잡힐 테고 말입니다”
윤기자는 문득 문제의 ‘구멍’을 떠올렸다. 범인은 바로 너다! 하는 선입견을 밑바닥에 깔고, 이도인과 김덕규의 얼굴빛을 번갈아 살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위에 나의 소행이니 날 잡아잡수하는 낭패의 빛은 서려있지 않았다.
“맞는 말일세!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음모 틀림없다구. 제주도를 쑥대밭 만들려고 작정한 악당들의 짓 틀림없어. 어쨌거나 보안 조치가 필요해. 윤군은 물론 김군도 각별히 입조심 몸조심해 주기 바라네!”
이도인 위원장은 그 저의가 무엇인지? 굳어진 얼굴로 다시금 보안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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