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말씀대로 ‘지역감정’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부쩍 신경이 쓰이는 게 있습니다. 형님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문제의 그 구멍이라구요. 구멍! 요컨대 그것은 보잘 것 없는 벽의 구멍이지만, 무시무시한 살인무기인걸요.
위원장실과 부위원장실 사이의 벽을 꿰뚫고 자리잡은 구멍-친목을 꾀하자는 공개된 선의의 구멍이 아니라, 정찰용 비밀구멍이기 때문입니다. 적대관계의 세력을 집어삼키기 위한 맹수의 입보다 무서운 정치적 입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 않습니까? 피에 굶주린 맹수의 입보다 무서운 정치적 입이 김대호선생을 꿀꺽 집어 삼켰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윤기자는 ‘지역감정’의 부산물이기보다는 ‘건준’내부의 반대세력이 저지른 범죄임을 ‘구멍론’을 내세워 반박 아닌 반박을 했다.
“자네 말에 일리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야. 집안에서 도둑맞으면 어미품도 뒤져보라는 얘기가 있지. 이번 사건의 경우도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범인은 천만뜻밖의 엉뚱한 곳에 숨어있을 수도 있단 말야. 내가 어느 한 곳에 집착하기보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얘기도 바로 그런 뜻이라구!”
오부장은 ‘지역감정’쪽으로 사건의 성격과 혐의 대상을 폭넓게 확대 해석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거리낌없이 밝혔다.
“잘 알겠습니다. 형님 말씀 명심할게요. 나름대로 원근(遠近)법을 적당히 가늠하면서 가까운 거리에서도 다그쳐보고, 먼 거리로부터 포위망을 좁혀 나가는 식으로 요령껏 손을 써볼까 합니다. 물론 목숨을 걸고 부딪쳐보는 모험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요. 저의 지나친 과민반응일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일거일동을 예의 관찰하는 자가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형님 그 귀 좀…”
윤기자는 갑자기 굳어진 얼굴로 창문 밖을 경계하면서, 오부장이 내민 한쪽 귀에다 자신의 입을 바삭 들이대고 입술을 들먹거렸다. 오진구는 들먹거리는 윤기자의 입술에 박자 맞추어 변화무쌍한 얼굴빛을 띄우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로 이 순간부터입니다. 아셨지요? 형님!”
귀엣말이 끝나자 윤기자가 히죽 웃으며 당조짐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팔자에 없는 호위병노릇 하다니…. 고맙네, 고마워! 자 밤도 깊었고 이만 헤어질까?”
오부장은 내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씽긋 웃고, 떠름한 목소리로 씨부렁거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럼 오늘밤은…”
윤기자가 먼저 밖으로 나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어서 길거리는 한산했다. 그가 길거리로 나와서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로 꺾어들었을 때였다. 30m밖에 조는 듯한 가로등이 깜박거리고 있었고, 달음질치는 2개의 검은 그림자가 가물가물 시야로 들어왔다. 웃저고리를 점퍼차림으로 변장을 한 오부장이 살금살금 따라나왔다.
“저걸 보세요! 제 말이 틀림없지요? 형님이 뒤에서 엄호사격만 잘 해주신다면 악당을 때려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백짓장도 마주 들어야 가볍다고, 아무리 제가 자신을 갖고 추적한다 해도, 혼자의 힘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놈들을 제 손으로 붙잡고 말 테니까는” 윤기자는 어둠이 짙은 담장 밑으로 바싹 다가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결의를 나타냈다.
“자네, 너무 흥분할 것 없네, 침착하고 냉정해야 해! 자네는 지금 신문기자가 아니고 명탐정 같네, 명수사관 뺨칠 명탐정말야. 자, 가자구! 1백미터거리를 두고 뒤따라가 보세! 눈치채고 도망치겠지? 그러나 실망할 것 없어. 오늘밤은 시작이니까!”
두사람은 따로 떨어져서 검은 그림자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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