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미터 거리를 두고 윤기자가 3분동안 걸어갔을 때 사거리가 나타났다. 범인은 추적 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그림자를 감춘 것 같았다. 윤기자는 사거리 한복판에 멈춰 서서 눈에 쌍불을 켜고 동서남북을 살펴보았지만, 검은 그림자는 보이지를 않았다. 바싹 달라붙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오진구와 사거리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윤기자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이 올 까닭이 없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범인의 뒤를 쫓았었지만, 어쩌면 범인은 자신을 뒤쫓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자 윤기자는 한가로이 방안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슬그머니 밖으로 기어 나왔다. 뒤뜰 처마 밑 어두컴컴한 구석에다 자리를 잡고 웅크리고 앉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먼동이 텄을 때에야 허둥지둥 방안으로 되돌아와서 잠깐 새우잠을 잤다. 출근시간보다 일찍 ‘건준’ 사무실로 나갔다. 이도인 위원장도 김덕규 부장도 나와있지 않았다. 선입견 탓인지 사무실 안은 썰렁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건준’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출입 처인 제주도청으로 직행했다. 기자실에 문은 열려있었지만, 늑장부리기 일쑤인 기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윤기자는 이 세상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느끼자, 기쁨 반 슬픔 반 묘한 감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도청안을 한바퀴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발길은 부두 쪽으로 향해지고 있었다. 아침나절이라 그런지 부두로 가는 길엔 오가는 사람들로 인파를 이루고 있어서 새삼스럽게 번화가라는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저 사람들 속에 미행자가...’ 그는 가끔 경계하는 눈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50여 미터 뒤에 낯익은 얼굴하나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윤기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방파제가 시작되는 부두가 까지 앞만 보고 걸어갔다.
엎드리면 코가 닿을 곳에서 ‘제주선박회사’간판이 까딱까딱 손짓을 하고 있었다. 배를 타려는 사람. 배웅 나온 사람 마중 나온 사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뻔질나게 대합실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윤기자는 대합실을 거쳐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책임자로 보이는 40대 사나이에게 명함을 내밀고 취재중 임을 밝혔다.
“사장님은 출장중이어서 자리에 안 계십니다만, 협조해 드려야 할 일이라면 힘닿는 데까지 제가 협조해드리겠습니다. 말씀해보시지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뭔가 낌새를 채고 켕기는 게 있어 저러는 것일까? 몸집이 우둥퉁하고 얼굴이 차돌같이 생긴 사나이로서는 격에 맞지 않는 호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꺼림 직한 느낌이 들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일이 순탄하게 풀릴 조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신문사와도 관계되는 일이라서 긴히 협조를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사실은 경성에 사는 동창생인데, 지난 15일∼25일 사이 제주도를 다녀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었지요. 우리 신문사에 들러서 전해줄 것이 있다며 기다 리라 해놓고, 여태까지 나타나지를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전화로 타진을 해보았었지요. 집에서는 이미 제주도로 떠났는데 소식이 딱 끊겼다지 뭡니까? 그렇다면 몰래 떠나왔다가 몰래 떠나간 게 아닐까 싶어서, 그걸 확인해 봤으면 하구...”
23∼25일 승선자 명단이라는 소리에 40대 사나이의 얼굴은 굳어졌고, 눈빛에서 당혹스러워 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협조’를 금과옥조로 내세웠던 사람인 만큼, 거부할 입장이 못된다는 점을 윤기자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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