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예술가 50人의 발자취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1-17 17: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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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 정미희 옮김/해냄 刊 자 혼자서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무서운 여자다.” 이탈리아의 미술평론가 로베르토 롱기는 1916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젠틸레스키는 ‘적장을 살해하는 유디트’라는 성서적인 모티브를 대범하고 잔인하게 표현했다. 싸늘한 표정으로 주저없이 칼을 빼어든 유디트의 행동은 완벽했다.

로마에서 화가의 딸로 태어난 젠틸레스키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명예로운 이탈리아의 ‘디자인 아카데미’의 회원이 됐다. 개인 작업실도 가졌고 남성화가들보다 작품 가격을 더 높게 받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미술선생이었던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상처가 있었다. 그녀는 상처로 인한 혼란을 예술작품으로 전환시켰다.

탁월한 지식이나 천재적인 재능은 오직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 여성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해냄刊)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여성예술가 50명의 발자취를 찾고있다.

조르조 바사리와 미켈란젤로도 재능을 인정했다는 소포니스바 안구이솔라(1535-1625년경)에서부터 현대미술의 ‘대모’로 불리는 루이즈 부르주아(1911~ )에 이르기까지 여성예술가들은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치열하게 지켜나갔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며 작업의 동반자였고 연인이었으며 ‘창작의 원천’이었다. 비록 많은 재능을 갖고있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로댕의 그늘 아래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케테 콜비츠는 당시 미술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다뤘는데 주된 주제는 전쟁, 빈곤, 그리고 죽음이었다. 아들의 전사 후 그 고통과 슬픔은 그녀를 열정적인 반전주의자로 만들었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교통사고로 거의 평생을 침대에서 지내야했던 프리다 칼로. 자신의 힘겨운 운명과 육체의 쇠약함을 항상 새롭게 표현했던 그녀는 작품을 미화하는데 얽매이지 않았다.

그밖에 최초의 성공한 여성 조각가로 인정받는 르네 진테니스, 유일한 여성 초현실주의자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메레트 오펜하임, 잭슨 폴록의 재능을 꽃피게하고 자신도 추상표현주의를 이끈 화가로 평가받은 리 크레이즈너 등 여성예술가들의 감춰져있던 또다른 예술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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