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1-19 17: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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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8) 범인들은 오리무중
“잘 알겠습니다 형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구, 뜸들일 것 없이 지금 곧 착수를 해야겠습니다. 유인(誘引)작전을 써야겠지요? 녀석을 때려잡는 데 환경과 여건이 좋은 광장 같은 널따란 마당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형님. 괜찮은 작전 같지 않습니까?”

냉정을 뒷전으로, 윤기자는 의욕과 정열만을 앞세우고 있었다. 오진구는 이럴 때 흥분은 금물일터인데도 조급하게 서두른다 싶어서 이마에 식은땀이 우썩 솟을 정도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때엔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거 잊어선 안 돼! 자네의 모든 걸 나는 믿고 있지만 말일세.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는 하더라도, 우리에겐 그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구!”

듣기 싫어하든 말든 오진구는 덩달아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나름대로의 몸가짐에 신경을 쓰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격을 감행하려는 윤기자의 언동에 쐐기를 박았다.

“네, 천금보다 값진 형님의 충고말씀 꼭 명심하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뒤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문제없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꼭 해내고 말 테니까요”

“고맙네. 저항감 없이 내 뜻을 선뜻 받아들이겠다니... 에 또, 그럼 장소를 어디로 잡는다? 방학중이라면 학교 운동장 같은 곳이 안성맞춤일터인데, 그럴 수는 없고 부두쪽이 나을까?”

“글쎄요. 장소가 문제군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들끓고 있는 부두쪽은...

선뜻 내키지가 않네요”

“느긋한 자세로 머리를 짜보자구! 몸싸움도 불가피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중요한 것은 머리싸움이 아닌가 싶네.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할라치면 녀석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점 각별히 명심하고, 젖먹은 힘과 고도의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생각하네. 광장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아주 멋진 작전이지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윤기자가 무겁게 입을 연다.

“보나마나 녀석은 제가 거리로 나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제가 이제부터 관덕정 쪽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의견임에 틀림없었지만 매우 신중한 말투였고, 그것은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곁들인 어조였다.

“그럼, 관덕정 앞 광장에서 한판 벌이겠다는 얘긴가? 그건 곤란해. 적에게 약점을 안겨주는 유치한 작전이니까”

오부장은 펄쩍 뛰며 더듬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손을 내저었다. 일언지하에 퉁바리를 놓는 우스꽝스런 제스처였다.

“그게 아니구요 형님! 제 얘기를 마저 들어보시지요. 제가 이제부터 칠성통을 나간 다음, 관덕정 앞을 지나 남문통으로 접어드는 겁니다. 형님은 여전히 1백m 쯤 떨어져서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녀석이 추격해오겠지요? 어쩌면 응원부대를 거느리고 말입니다. 그러나 두려울 건 없다고 봅니다. 녀석도 장터, 즉 5일 시장을 머리에 떠올릴지도 모르니까 부랴부랴 공격태세를 갖춘다 해서 이상할 건 없겠지요. 저는 곧장 장터 안으로 들어설 겁니다. 형님은 파출소에 들러서, 유사시에 현장으로 경찰을 출동시켜 줄 것을 당부해 두시면 후환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저는 먼저 나가겠습니다”

윤기자는 말을 마치자 번개같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오진구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5분쯤 기다리자 5명의 거한 들이 다방 안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지금 나가야겠어. 자네들은 잠시 후 남문통 장터로 나가주게! 어쩌면 최후의 결전장이 될 테니까 단단히 정신무장 하구...알았지?”

오진구는 5명의 거한들에게 서릿발같은 작전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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