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1-25 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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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12) 범인들은 오리무중
도대체 이게 꿈이냐 생시냐?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기막히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기절초풍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얼굴만 빠끔히 내놓고 온몸을 이불로 뒤집어 쓴 김영선-믿기지 않을 비참한 모습으로 끙끙거리며 아랫목에 모로 나뒹굴고 있어서, 이만성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눈앞이 캄캄했다.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으나 꿈은 아니었다. 반은 살고 반은 죽어있는 상태, 이만성의 헤벌린 입을 다물 수 없게 하는 끔찍한 참상이었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예쁘고 앳된 이마엔 반창고가 붙여졌고, 눈언저리는 터질 듯이 퉁퉁부었고 매혹적인 입술은 험상궂게 부르텄고, 안면의 여기저기엔 검푸르뎅뎅하니 피멍이 들었다.

어쩌다 얼굴이 이 지경으로 망그라지고 말았단 말인가? 글자 그대로 만신창이 온전한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가 없다. 혹시 바다에 ‘물질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가파른 바위에 부딪쳐서 중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것 아닐까?

“도대체 어떻게 된게야 응?”

말문이 막혀 넋을 잃은채 내려다보고만 있던 이만성이 입을 연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목이 메이고 울음이 섞인, 비통한 가락의 물음이었다.

“죄송해요, 오빠! 이런 꼴 보이고싶지 않아서, 오빠의 목소리인 줄 알면서도 대꾸를 안한게 아니라 못했다구요. 용서해주세요. 오빠!”

김영선은 입가에 방긋 미소를 지으며 붙임성있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무슨소리야? 내가 싫었던게 아니라면 이런 때일수록, 반가이 맞아주든가 화를 내등가 그랬어야 했잖아? 내 목소리인 줄 알면서 못 들은척 하려 했다니 정망 영선이다운 짓이 아니야. 얘기 듣고보니 섭섭하기 짝이 없군!”

이만성은 얼어붙었던 가슴에 따스한 봄바람이라도 스며든 듯, 농담반 진담반 눈을 끔쩍거리며 그녀의 말꼬리를 붙잡고 튕겼다.
뜨거운 애정의 화음이 조심스럽게 터뜨려진 달콤한 꾸짖음이었다.

“그게 아니라니까, 오빤! 실망하실까봐 겁이 나서 그랬던 거라구요. 다른 뜻은 없었던 거란 말예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펄쩍 뛰는 모습을 감춘 채,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역시 뜨거운 사랑의 음률이 탄력 있게 터뜨려진 달콤한 반발이었다.

“됐어! 그냥 해 본 소리야. 신경쓸 것 없대두. 그래. 어쩌다 이렇게 된게야 응? 중상인가본데…. 언제 어디서 왜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속시원히 얘길해 보라구!”

“네 말씀드릴게요. 앉으세요. 얘기하지 말라고 해도 얘기할테니 앉기나 하세요! 죄지은 사람처럼 안절부절하지 마시구…”
“음. 내가 여태 서있었나? 그래 앉을게 어서 얘길해 봐!”

이만성은 두 무릎을 제운채 불안정한 자세로 웅크리고 앉았다. 앉을과 동시에 그녀의 손목을 두손으로 꼬옥 붙잡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상처투성이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얼굴위로 눈초리를 떨구긴 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퉁퉁부운 눈두덩 속의 까만 눈동자만은 청순함과 진솔함을 지닌 채, 새벽하늘의 별빛처럼 초롱초롱 반짝이고 있다.

한참동안 말없이 뚫어지게 올려다보던 그녀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오빠 저 좀 일으켜주세요!” 하고 윗몸을 들썩거렸다.

“나중에 일으켜줄게, 얘기부터 해봐!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 응?” 이만성은 붙잡았던 손을 놓고, 그녀의 반창고 붙인 얼굴부터 쓰다듬었다.

가슴이 격하게 뛰고 있었다. 이불속의 몸은 바람에 문풍지 떨 듯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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