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2-02 1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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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1) 군중소리 발포소리
김대호선생의 해상실종사건-그것은 자신이 극본을 쓰고 스스로 연출한 자작극이라는 기상천외의 얘기를 듣고, 이만성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한참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짓궂게 훑어보아도 아버지의 얼굴은 여느때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썹하나 까딱함이 없이 터뜨린 발설이고 보니, 이만성은 귀를 의심하며 쥐구멍을 찾고픈 정도로 두려움이 앞서기까지 했다.

사실은 이양국의 그 추리가 얼마만큼 신빙성을 지닌 것인지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만성은 탐정소설의 원조(元祖)인 ‘에드거 앨런 포’ 저리가라 할 탐정작가 기질을 가진 아버지의 추리인지라, 안 믿는쪽 보다는 믿는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날밤 이만성은 가슴이 뛰고 머릿속이 뒤숭숭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첫 닭 우는 소리를 듣기 바쁘게 자전거를 이끌고 집을 뛰쳐나왔다. 도선마을로 달려간 그는 벼락같이 김순익을 깨웠다. 어리둥절해 하는 김순익을 우격다짐으로 뒷자리에 태움과 동시에, 질풍같이 신작로를 달렸다.

눈 깜짝하는 사이 두 사람은 모슬포-한림-애월을 지나 목적지인 제주성내에 들어섰다.

이만성의 호주머니 속엔 서병천이 쪽지에 그려준 약도가 들어있었다. ‘松都旅館’-서병천의 숙소인 송도여관은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지항 서쪽 바닷가 널따란 대지 위에 우뚝 선, 현대식 3층 건물인데다 인상적인 ‘松都’라는 두 글자가 손짓을 하며, 새벽녘 불청객들을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정문 안으로 들어선 이만성은 불문곡직하고 ‘사무실’창구 앞으로 달려들어 똑·똑·똑…노크를 했다. 선잠을 자고 있던 보이가 코침 맞은 망아지 뛰어 일어나듯 벌떡 일어나,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기웃이 고개를 내밀었다. 닳고닳은 버릇이겠지만, 투숙객인 줄 착각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려다 손바닥 뒤집듯 정색을 했다.

“우리는 투숙객이 아니고…손님을 만나러 온 사람인데, 서병천씨라고 이 여관에 묵고 계시지요? 그 분을 좀…”

이만성이 약간 고압적인 자세로 찾아온 뜻을 밝혔다. 순간, 보이의 얼굴에 얄찍한 웃음기같은 것이 떠올랐다가 후딱 사라지더니, “아, 우리 사장님이오? 그분은 투숙객이 아니고 이 여관 주인되시는 분이라구요”하고 아래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뭐야? 이 여관의 주인이라구? 서병천씨가 언제 이런 여관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이만성은 꿈을 꾸는 듯 도깨비에 홀린 듯, 믿기지가 않아서 헛소리처럼 중얼거리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넋을 잃은 얼굴로 현관 안을 휘 둘러보았다. 지은지 얼마 안되는 으리으리한 신축건물-여관이라기 보다는 고급호텔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고루거각’ 떠올리는 큰 여관이다. 서병천 그 사람은 이 여관을 자비로 지은 것일까? 아니면 일본군대에 장교로 복무하면서 장만한 것일까? 의문에 의문은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 둘러보던 눈 동작을 멈추었다.

‘그럼, 서병천사장 지금 계신가요?” “네, 잠깐만요! 밤새도록 손님들하고 얘기를 나누시다 잠자리에 드신지 얼마 안되었거든요”
“너무 이른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해요. 이만성이라는 사람 왔다고 전해주슈!” “네, 알겠습니다.” 보이는 안면방해에도 불구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2층을 향해 나는 듯이 뛰어갔다.

“서병천씨 고향은 경기도 개성이라는데, 제주도로 이민을, 아니 이사를 온 셈인가?”김순익이 가시돋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때였다. 서병천이 2층 계단위에 나타난 것은…. “우리는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여기가 개성 맞지요? 혹시 개성의 터주대감 서병천선생 되십니까?”이만성이 올려다보며 툴툴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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