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익이 제주성내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인 11월 5일 오후 3시. 도선마을 향사(鄕舍-전 도선의숙 건물)에는 젊은층과 중년층 3백여명이 모여들어 초만원을 이루었다. 한발 늦게 달려온 젊은이들은 현관안을 가득 메웠고, 현관까지도 들어가지 못한 젊은이들은 앞마당과 뒤뜰 할 것 없이 공간이라는 공간을 빽빽이 채운 상태였다.
도선마을 향사가 세워진 이래 처음 보는 엄청난 군중집회였다. 도대체 군중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기를 쓰고 앞다투어 몰려든 것일까? 허풍선이 약장수가 싸구려 약을 팔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허름한 곡마단이 어수룩한 시골사람들에게 손에 땀을 쥐게하는 스릴장면을 보여주어 오붓하게 푼돈을 끌어모으려는 신바람 나는 곡예가 베풀어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도선마을이 낳은 특공대장 김순익의 입김으로 달든 쓰든간에, 좋고 싫고를 떠나서 도선마을을 중심으로 몇 개의 이웃마을에서, 말하자면 선택받은 사람들로 채워진게 그 정도였다. 명분상으론 ‘시국강연’같은 것을 내세우고 있었기만 주최자인 김순익의 깊은 속마음과 노리는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향사안에 확성기는 없어도 낡은 연단과 교탁이 갖추어져 있었다. 연단근처에 내빈석이 마련되었는데, 낯익은 얼굴로 이만성과 서병천이 자리잡았고 건장한 70대 노인 한분이 동석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고정관·조용석은 급한 사정이 있어 불참하게 된 데 대해 고문자격으로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쉬워하는 모습들이었다. 이만성·서병천 등과 귀엣말을 주고 받은 끝에 단상에 오른 사람은 김순익이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나와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시국강연의 핵심과제에 대해서는 잠시후 이 고장의 원로이시고 ‘법정사(法井寺)항일투쟁’에 한 몫하신 서원형(徐元亨-70)선생으로부터 금쪽 같은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앞서 예비지식이라고 하면 뭣합니다만, 제가 간단한 소개말씀을 드리고자합니다.
여러분도 두루 아시는 바와 같이 친일파·민족반역자를 몰아내려는 추방운동이 돌풍을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휩쓸 조짐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 또한 예외가 아닐 정도가 아니라, 한층 더 맹렬한 기세로 물밀 듯이 밀어닥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각 면 각 마을에 일제의 앞잡이로서 면민과 마을사람들을 못살게 굴어온 그자들을 움도 싹도 없이 뿌리째 삭독 잘라버려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우리 마을 우리 고장 사람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발벗고 나서서 말끔히 쓸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급박한 우리의 당면과제가 아니겠습니까?”
김순익은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거물진 목소리로 장황하게 전제한 다음, 숨을 돌리고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도선마을 그리고 가까운 이웃마을, 더 나아가서 관광면민 전체는 30년가까이 땅속 깊이 파묻혔던 선열들의 눈물겨운 항일투쟁 발자취를 대지위로 끌어올려, 되새기고 그 분들이 못 이룬 과업을 뒤늦게나마 자손된 도리로서 완수해야 할 엄숙한 시점에 우리 모두는 서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법정사 항일투쟁’을 아십니까?
아마 금시초문인 사람들이 적지 않을 줄 압니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 즉 3·1독립운동보다 1년전인 1918년에 제주도에 그 중에서도 우리 도선마을 ‘법정사’를 무대로,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항일 투쟁이 일어났던 겁니다. 물론 주동자는 육지부에서 온 김연일스님이었지만, 제주출신으로는 이만성동지의 할아버지 이정흡(李定洽-44)선생과저의 할아버지 등 10여명이 주축을 이루어 4500여명의 애국농민들을 거느리고 벌떼같이 몰려가서, 관광면 경찰주재소를 때려부수고 불을 질렀는가 하면 3명의 일본경찰을 포박함과 동시에 13명의 구금된 동포를 풀어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겁니다”
김순익의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고, 청중들은 숨을 죽인고 있엇다. 격한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나서 김순익은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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