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2-23 18: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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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비록 아부성 격려일망정, 심복부하들의 격려에 힘을 얻은 이종상은 헛기침을 하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위엄을 가다듬었다.

“고맙네, 자네들! 친자식들도 저 모양인데, 자네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목숨을 내걸고 끝까지 싸울터이고, 싸웠다하면 이기고 말거라구! 그런데, 문제는 무기야 무기…. 전쟁을 하자면 용기와 지혜가 없어도 싸울 수 없지만, 용기와 지혜만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란 말야. 작전과 전략도 중요하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비가 아니겠어? 장비가 갖춰져 있다 해도 쉽지 않은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다는 일이라고 생각되네. 어디 자네들 머릿속에서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다면 서슴지 말구 내놔보게!”

이종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준비에 들어가고 있음을 무게있는 말과 굳어진 몸짓으로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5명의 심복부하들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난감했다.

힘닿는 데까지 싸우겠노라고 장담을 했지만, 기발한 생각 어쩌고 하는 데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눈치껏, 코치껏 입으로 한 몫 하는 알랑거리기 그것만이 금이야 옥이야 하는 천냥짜리 밑천이 아니던가?

서푼어치 지식이나 지혜가 들어있지 않은 빈털터리 머릿속에서 기발한 생각을 내놓으라는 요구야말로 글자 그대로 ‘연목구어’ 산봉우리에 올라가 생선 옥돔을 낚으라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다.

말문이 막혀버린 심복부하들은 뒷 고개만 긁적거리며 울상 짓고, 진땀 흘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종상이 한참동안 노려보다 비웃음이 깔린 웃음을 히죽 웃었다. 저 골빈 친구들을 심복이랍시고 신임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한 인간이지! 이종상은 자조(自嘲)의 웃음을 씽긋 웃었다.

이래 웃든 저래 웃든 웃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자네들에게 알맞은 임무를 부여할테니까 시키는 대로 수행해 주면 되네, 누가 뭐라고 해도 작전에 관한 한, 내게 구상이 따로 있으니 자네들은 머리를 짜내지 않아도 될게야!. 뭔고 하니, 내일 아침일찍 도선마을로 뛰어가서 김순익이라는 녀석을 만나 협상을 해주게나! 쉽게 말하면 구워삶기 작전인 셈인데… 다섯사람 함께 가는 게야! 어렵겠지만, 해낼 수 있겠지? 오늘밤은 집에 가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아침 일찍 내 집으로 와주게, 협상방법을 자상하게 얘기해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김순익, 그 애가 세상이 바꿨다고 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다니 정말 눈에 뵈는게 없나? 개새끼, 저걸 그냐!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달려가서 요절을 내고싶습니다만…”

“네, 그렇습니다. 면서기 자격도 없는 주제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면사무소를 뭘로 알로 제멋대로 까불다니, 내 저걸 그냥…단칼에 때려잡지 못하면 10년 쌓은 면서기 관록 내동댕이치고 만다니까!”

“옳소 동감이오!”

“나도 동감이오! 어수선한 과도기 틈타서 난동부리겠다는 놈 용서 못해!”

“말보다 행동이 중요해!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거 뭐 있나? 당장 달려가서 요절을 내고 맙시다!”

죽은 것처럼 움츠렀던 5명의 알량한 심복들이, 상사에게 아부만 잘하는 ‘무골호인’들인 줄 알았는데 김순익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무슨 ‘철천지 한’이라도 품었던 대상인 것처럼, 소름끼치는 공격성 발언을 기탄 없이 퍼부어 대는 것이었다.

아, 이건 색다른 과잉충성이군! 이종상은 놀라는 척하면서도 속으론 흐믓하고 기뻤다.

“자네들, 흥분하는 건 자유이지만, 약점 잡힐 짓은 안돼, 오늘밤은 차분히 눈 붙였다가 아침에 와주게! 알겠지?”

이종상은 5명의 심복들에게 일일이 어깨를 토닥여주고 일단 그들을 귀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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