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자를 쥐어야할 ‘여와’는 왜 컴퍼스를 쥐고 있을까?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12-29 16: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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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서역미술展’서 선뵌 ‘복희여와도’의 비밀 지난 1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된 ‘서역미술’ 특별전에는 이 박물관 소장 중앙아시아 유물 약 150점이 선보이고 있다.

이들 전시유물 중 ‘복희여와도’라고 하는 마직(麻職) 채색화 2점이 있다. 두 점 모두 투르판(吐魯番)지역 아스타나(阿斯塔那)묘실 천장에 부착되어 있던 것들로 7세기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림 크기는 한 점이 79 x 189㎝, 다른 한 점이 98.2 x 225.5㎝로서 대형급이다.

전체적인 구도는 남신인 복희와 여신인 여와가 뱀처럼 생긴 허리 아래 하반신은 서로 꼬고 있으며, 상반신은 어깨를 서로 껴안은 채 하나의 스커트를 공유하고 있다.

정면에서 보아 두 그림 모두 왼쪽이 여와, 오른쪽이 복희가 자리잡고 있다.

이번 특별전을 준비한 국립중앙박물관 민병훈 학예연구관은 이 복희여와도가 천지창조 신화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복희와 여와는 중국고대신화에서 인류와 천지의 창조신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희와 여와는 탄생과정이 각각 다르지만 진한시대를 지나면서 음양사상의 영향으로 부부로 급격히 결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복희여와도는 천문지리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목거리를 제공한다.

그림 중앙의 맨아래쪽과 맨위쪽에는 각각 바퀴살 모양 무늬가 들어가 있고 그 테두리를 둘러가며 배치된 점들을 거느리는 커다란 원이 각기 배치되어 있다. 또 그림 상하 좌우 곳곳에는 별자리로 생각되는 점 무늬 수십 개가 자리잡고 있다.

동아시아 고대 천문사상 전공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일권 박사는 상하에 배치된 큰 원은 각각 태양과 달이라고 한다. 또 많은 점 무늬 중 북두칠성이 뚜렷하며, 그 반대편에서는 남두육성으로 생각되는 별자리도 있다고 덧붙였다.

태양은 양(陽)이며 남성이요, 달은 음(陰)이며 여성이라는 점과, 남신인 복희와 여신인 여와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이 그림이 음양합일에 기초한 우주 혹은 천지의 탄생을 형상화하려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한데 일반적인 음양사상과는 어긋나는 대목이 이 그림에서 발견된다.

그림에는 남신인 복희가 ‘ㄱ’자 모양 도구를 들고 있는 반면, 여신인 여와는 컴퍼스나 가위 비슷한 물건을 각각 들고 있다. 이들 도구는 무엇일까?

김일권 박사에 의하면 ‘ㄱ’자 모양은 직각을 그리는데 쓰는 곱자로서 규(規)라는 것인 반면, 컴퍼스(가위) 같은 물건은 원을 그릴 때 쓰는 구(矩)라는 도구.

그러니 이 그림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방이 모가 났다는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동양 천문우주관, 그 전형을 표상하고 있는 셈이다. 곧, 곱자는 사방이 모가 났다는 땅이며, 컴퍼스는 둥근 하늘을 상징한다.

한데 문제는 여신인 여와가 양(陽)이요 남성이며 천(天)에 속하는 컴퍼스를, 반대로 남신인 복희가 음(陰)이요 여성이며 지(地)에 해당되는 곱자를 들고 있다.

이러한 뒤바뀜 현상에 대해 김일권 박사의 반응은 “의아하다”는 것이다.

곱자를 여와가, 컴퍼스를 복희가 쥐어야 정상인데 이런 구도가 헝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복희여와도’는 또 다른 의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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