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개인소장자가 구한말 화가 홍순승(洪淳昇)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민충정공 혈죽도’를 공개한 것. 이 소장자는 1976년 대전의 한 고서수집가로부터 이 그림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민충정공 본가의 충정공 방에서 푸른 대나무 네줄기가 솟아오른 사건은 언론에도 보도돼 화제가 됐으며 많은 화가들이 이를 기록화로 남긴 것으로 전해지나 실제 작품은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
다만 저명화가 석연(石然) 양기훈(楊基薰)과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이 각각 그린 ‘민충정공 혈죽도’가 대한매일신보와 대한자강회월보에 사진으로 실려 있을 뿐이다.
이번에 공개된 혈죽도는 가로 34㎝ 세로 113㎝에 비단위에 그려진 것으로, 음각으로 ‘홍순승인(洪淳昇印)’과 양각으로 ‘만취화인(晩翠畵人)’을 새긴 낙관이 두개 찍혀져있다. 만취는 홍순승의 호로 추정된다.
홍순승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18년 창립되어 1936년까지 존속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단체인 ‘서화협회’의 회원 명단에 같은 이름이 들어있다.
그림의 윗부분에는 화제(제목) 대신 ‘찬(贊)’이 들어있다. 혈죽이 발견된 경위와 민충정공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돼있는데 일부를 번역하면 “소멸되지 않는 것은 충의이고/ 흩어지지 않는 것은 정기인데/ 그 기운이 하나로 뭉쳐/ 대나무가 자랐다네/...장차 그 장렬한 절의 힘입어/ 기울어진 국운이 부지될 거네/ 이를 그림으로 그려 전하거니/ 꽃다운 이름 만고에 빛나리라(민족문화추진회 송기채 번역)”로 되어있다.
글 마지막에는 하산찬(霞山贊), 즉 “하산이 찬을 지었다”고 기록됐다. 하산이 누구인가는 의문이다.
당시 하산이라는 호를 쓴 사람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문인 조화옥, 한성판윤을 지낸 남정철, 의금부도사를 지낸 이홍렬 세사람이다.
홍순승의 낙관이 찍혀있으나 그 위에는 ‘성재서(省齋書)’라고 적혀져있다. 홍순승이 그림을 그리고 하산이 찬을 짓고 성재가 글씨를 쓴 것으로 풀이되는데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의 호가 성재이다.
그러나 성재가 바로 이시영 선생인지는 필적 비교 등 추후 연구를 통해 규명돼야 할 것이다. 또한 그림 하나에 세사람이 등장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미술평론가인 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소장은 “비단의 지질이나 그림, 발문 수법 등을 보면 민충정공이 자결하고 혈죽이 자라났다는 그 시기의 것이 확실하다”고 전제하고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등 학계의 후속 연구가 필요하나 이같은 그림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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