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세책본’ 발견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03-18 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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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국회도서관內 동양문고서… 현대국어로 옮겨 출간키로 기존에 알려진 ‘홍길동전’과는 상이한 형태의 세책본(貰冊本) ‘홍길동전’이 발견됐다. 책은 3권 분량의 필사본으로 일본 국회도서관 내 동양문고에서 발견됐으며, 현대 국어로 옮겨져 출간된다.

또한 ‘춘향전’ ‘유충렬전’ ‘구운몽’ ‘열국지’ 등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고전들의 세책본도 대거 새로 발견됐으며, 이들도 컴퓨터 입력 및 주석 작업을 거쳐 출간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경진 연세대 교수(국문학) 연구팀은 지난 2002년 7월부터 2년 예정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조선후기 세책본의 수집·정리·현대어역 및 주석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 결과 한국을 비롯해 일본, 영국, 미국, 프랑스에 흩어져 있는 고전들의 세책본 500여권을 수집, 이 가운데 ‘홍길동전’ ‘춘향전’ 등 전체 3분의 2 가량에 대한 입력 및 주석 작업을 마쳤다고 17일 밝혔다.

그간 국문학계에서 개별 연구자들이 부분적으로 세책본을 언급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홍길동전’ ‘춘향전(일본 동양문고본, 10권)’ 등의 고전뿐 아니라 ‘옥환기봉’(프랑스 기메박물관본, 12권), ‘옥인기연’(프랑스 기메박물관본, 8권), ‘춘추열국지’(영국 대영도서관본, 33권) 등 처음 발견되는 소설들의 세책본이 대거 연구됨으로써 문학의 자본주의화 과정을 규명하고 소설사를 재조명하는 전기가 마련됐다.

‘세책본(貰冊本)’이란 주로 19세기에 돈을 받고 빌려주기 위해 제작된 독특한 형태의 책. 흥미를 유발할 만한 부분을 늘이는 등 원본에 변형을 가하고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행수를 줄여 책의 분량을 늘인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재미가 고조되는 부분에서 한 권을 마무리해, 다음권을 빌려 읽도록 유도한 점도 눈에 띈다.

19세기에 향목동(현재의 서울 중구에 위치), 누동(종로구), 금호(성동구) 등 30여곳의 세책방에서 유통되던 이 책들은 20세기에 활판본이 등장하며 점차 사라졌다.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속에서 일본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미국 등으로 유입된 것으로만 전해져 왔다.

이번에 현대어로 번역된 ‘홍길동전’(책세상 刊)은 지금의 사직동 세책방에서 유통되던 책이 일본의 동양문고에 흘러든 사례이다.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고 싸우는 이야기가 전체 3권 가운데 한 권을 차지할 정도로 늘어나고, 서얼차별 문제는 경판본과 비슷한 분량으로 남아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 특징이다.

역시 동양문고에서 발견된 ‘춘향전’은 당시에 유행하던 잡가들이 많이 들어가고, 이도령이 성루에서 암행어사로 출두하기까지 노정이 세세하게 묘사됐다. 이도령과 춘향이 사이의 사랑 이야기도 전체적으로 늘어났다.

연구팀은 이번에 수집된 책들은 일본의 국회도서관 내 동양문고와 천리대, 동경대 등의 도서관, 프랑스의 기메박물관과 동양어학교,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하버드대 도서관 등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20여명에 이르는 연구팀은 몇 년에 걸쳐 현지를 직접 다니며 확인 절차를 거쳐 세책본을 수집했다.

현재 연구팀은 ‘홍길동전’과 ‘춘향전’을 비롯해 ‘유충렬전’(일본 동양문고본, 7권), ‘구운몽’(이대본, 9권), ‘삼국지’(일본 동양문고본, 69권), ‘옥루몽’(일본 동양문고본, 30권) 등에 대한 주석 작업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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